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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와 단교 북, 제재회피ㆍ돈세탁 루트 발각 우려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난 19일 말레이시아와 단교를 선언한 북한이 21일 쿠알라룸푸르 주재 북한 대사관 직원과 가족들을 모두 철수시켰다.

북한, 21일 현지 대사관서 모두 철수 #"미국의 극악무도한 반북 정책 탓" #"말레이시아는 북한의 돈세탁 거점" #"동남아 제재회피 루트 탄로 우려"

말레이시아와 수교 단절을 선언한 북한이 21일 현지 대사관 관계자를 철수시키고 있다. 30여명의 대사관 직원과 가족, 관계자는 이날 버스를 이용해 공항으로 향했다. [연합뉴스]

말레이시아와 수교 단절을 선언한 북한이 21일 현지 대사관 관계자를 철수시키고 있다. 30여명의 대사관 직원과 가족, 관계자는 이날 버스를 이용해 공항으로 향했다. [연합뉴스]

북한 주민의 신병을 미국에 인도한 말레이시아의 조치에 반발해 북한이 앞서 19일 단교를 선언하자, 같은 날 말레이시아 정부는 “북한 외교관들은 48시간 이내에 말레이시아를 떠나라”고 맞대응했다. 이날 북한 대사관 직원들의 철수는 말레이시아의 추방 조치에 따른 것이다.

더 스타 등 말레이시아 현지 매체와 외신들에 따르면 김유성 북한 대사대리는 대사관을 떠나기 전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번 사태가 가져올 결과물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미국의 극악무도한 정책으로 만들어진 반북 음모의 산물”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김 대사대리는 “말레이시아 당국은 맹목적으로 미국을 지지했다”며 “말레이시아가 무고한 우리 국민을 미국에 인도함에 따라 양국 관계의 근간을 송두리째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언급한 ‘무고한 국민’은 말레이시아가 최근 미국에 인도한 이른바 북한인 사업가 문철명(56)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문 씨가 대북제재를 위반해 술과 시계 등 사치품을 북한에 보냈고, 돈세탁을 했다며 2019년 5월 말레이시아에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문 씨를 쿠알라룸푸르에서 체포했으며, 같은 해 12월 말레이시아 법원은 미국 인도를 승인했다. 말레이시아 대법원은 이달 초 신병 인도 거부를 요청한 문 씨의 상고를 기각해 이를 확정했다.

북한은 1973년 김일성 주석의 제3세계 외교 강화의 일환으로 말레이시아와 수교한 뒤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북한은 말레이시아를 정보 수집 및 공작, 외화벌이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며, 동남아의 거점으로 관리했다고 한다. 그러다 2017년 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살당한 뒤 양측은 대사를 맞추방하며 소원해졌다.

김유성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 대리는 21일 대사관 철수에 앞서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번 사태가 가져올 결과물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유성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 대리는 21일 대사관 철수에 앞서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번 사태가 가져올 결과물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은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페이퍼 컴퍼니 등을 이용해 자금세탁과 밀수를 하는 등 대북제재의 ‘틈’을 활용한 것으로 정보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이날 철수한 북한 사람들이 30여명에 이르는 것도 대사관 직원과 가족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활동해온’ 인물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북한이 자국민 한 명의 신병 인도를 이유로 단교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며 셀프 고립에 나선 것 역시 말레이시아에서 대북제재 회피 통로와 수단이 탄로 날 가능성을 우려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전직 정보 당국자는 “북한은 말레이시아에 위장 회사를 차려놓고 대남 정보를 수집하고, 돈세탁 등을 해 왔다”며 “이에 관여했던 인물(문철명)이 미국에 넘겨지면서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 자신들의 제재 회피 ‘루트’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단교까지 감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말레이시아를 떠난 북한 관계자들은 일단 중국으로 향했을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을 우려해 국경을 통제하고 있어 이들이 곧바로 북한으로 갈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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