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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미확인 한상대 접대설, 이규원이 교묘히 언론 흘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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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19년 3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를 주도한 이규원 검사(41·사법연수원 36기)는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8팀 단원이었다. 당시 허위 긴급 출국금지 요청서 등으로 김 전 차관을 불법 출국금지한 혐의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이첩된 상태다.

"검증 안 된 '윤중천 면담 내용' 흘려 갈등" #'김학의 사건' 같은 팀 박준영 변호사 증언

이규원 검사가 당시 김학의 전 차관 출국금지 전부터 '최순실 배후설''한상대 전 검찰총장 연루설' 등 검증도 안 된 사실을 언론에 제공하는 데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 전 차관 출국금지 2주 전인 2019년 3월 8일 조사단원에서 스스로 물러난 박준영(48ㆍ사법연수원 35기) 변호사가 7일 중앙일보에 당시 상황과 자료 등을 상세히 소개하면서다. 그는 "이 검사가 김 전 차관 재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러 언론을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여 직접 문제 제기를 여러 차례 했는데도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당시 8팀의 갈등의 원인은 이규원 검사 본인이 작성한 소위 '윤중천 면담 보고서'와 '박관천 면담 보고서' 등 내부 자료 내용이 언론에 흘러나갔기 때문이었다. 박 변호사는 "이 검사에게 검증이 제대로 안 된 설익은 보도가 나간 경위를 물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모른다’고만 해 다툼이 있었고, 결국 스스로 그만두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순실 배후설' 보도 나오자…"박관천 모처 면담" 확인   

박 변호사에 따르면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은 대검 진상조사단의 검증보다 언론 보도가 항상 앞서 나갔다고 한다. 2019년 5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조사단으로부터 최종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검찰의 실체적 진실 발견 의무를 도외시한 채 경찰 송치 죄명에 국한된 부실 수사”였고 “김학의·윤중천에 대한 봐주기 수사 정황이 확인됐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소위 윤중천 별장 접대 추가 리스트와 같은 보도는 조사 결과 보고보다 2개월 앞서 대부분 언론을 통해 보도된 뒤였다. 같은 해 3월 23일 0시 10분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보다 관련 보도가 2주 이상 앞섰다.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으로 활동한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연합뉴스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으로 활동한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연합뉴스

박 변호사는 “조사 단계에서 사실관계 확인이 되지 않은 채 보도되는 일이 잦았다”고 말했다. “조사단에 몸담은 입장에서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대검 진상조사단은 당시 총 9개 팀이었는데 각 사건 팀은 검찰 내부위원(파견 검사·수사관)과 외부 위원인 변호사·교수 등 6~7명으로 구성됐다. 김 전 차관 사건은 당초 5팀이 조사를 진행하다가 2018년 11월 이규원 검사와 박 변호사가 소속된 8팀으로 이첩됐다. 김 전 차관 관련 8팀의 ‘언론 문의(공보) 대응’은 이 검사가 결정했다고 한다.

‘김학의 수사’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검찰 수사 일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김학의 수사’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검찰 수사 일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박 변호사는 내부 자료 유출의 대표 사례로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배후론’ 보도를 꼽았다. 대검 진상조사단이 김 전 차관이 2013년 법무부 차관에 임명된 배경을 확인하기 위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박관천 전 경정을 소환 조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곧바로 “박 전 경정이 ‘김 전 차관의 임명 배경에 최순실씨가 있었다’고 진술했다”는 3월 6일 한 방송사 보도로 이어졌다.

김 전 차관은 2013년 3월 13일 법무부 차관으로 지명됐고 이후 성접대 의혹이 불거지며 취임 엿새 만에 낙마했다. 이와 관련 대검 진상조사단이 6년 만에 김 전 차관 임명의 진실을 확인한 것처럼 보도됐지만, 박 변호사는 "해당 보도는 진위가 검증되지 않은 채 조사단 내부에서 흘러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의 전 차관이나 최씨는 보도 이후 “서로 전혀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박 변호사는 보도 직후 이규원 검사를 비롯한 조사단원 7명이 모인 자리에서 “(박 전 경정의 진술을 확보했다는) 이 기사가 어떻게 보도된 것이냐”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검사는 보도 경위에 대해선 별다른 해명 없이 “(박 전 경정의) 실명은 기사에서 빼달라고 (기자에게) 요구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조사단은 2013년도에 민정수석실 근무관련자들을 조사 중입니다”라는 내용을 검찰 출입기자단에 배포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실제 같은 내용이 문자 메시지로 검찰 출입기자단에 배포됐다.

박 변호사는 이를 “조사 중인 내용이 언론에 흘러나간 배후에 이 검사가 있다고 확신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현재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22일 박 전 경정을 불러 당시 진상조사단이 작성한 면담보고서의 허위 기재 여부를 판단하는 중이다.

“'한상대 총장 명함' 조심해야”에 이규원 “오늘이 변곡점”

비슷한 시기 2019년 3월 초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한상대 전 검찰총장에게 수천만 원을 건넨 적이 있다는 진술을 조사단이 확보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도 이 검사의 태도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보도 이후 기자들의 확인 요청이 쏟아지자, 이규원 검사는 8팀 단원들에 처음엔 “아무 대응 말라”고 알렸다가, “아주 끈질긴 기자들이 있으면 구두로 ‘별장에서 한상대 명함이 확보된 적 있다’ 정도 멘트는 무방할 것 같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교묘하게 한 전 총장이 연루됐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이에 박 변호사는 이 검사에게 재차 “명함이 나왔다고 하면 별장(접대 의혹)이 연결될 텐데 조심해야 하는 부분 아니냐”고 따졌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온 건 “오늘이 변곡점이라 생각한다”는 이 검사의 대답이었다.

그러나 이후 법무부 과거사위 수사 권고로 구성된 검찰 수사단은 같은 해 6월 6일 “한 전 총장 등에 대해 수사에 착수할 구체적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론 냈다. 윤씨 전화번호부에 한 전 총장의 이름과 통화 내역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윤씨는 한 전 총장에게 돈을 줬다고 한 적이 없다며 이규원 검사가 작성한 자신과 면담 보고서 내용을 부인했다.

박 변호사는 “(2019년 10월께 보도된)‘윤석열 검찰총장 별장 접대 의혹’ 보도 과정에도 이 검사가 어떤 식으로든 관여됐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 이름이 나올 당시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친정권 인사로 분류됐고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해 7월 총장 임명 당시 ‘우리 총장님’이라고 부를 정도였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2019년 9월 6일) 전후로 여권 기류가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조국 전 장관 수사 착수 뒤 윤 총장을 곧바로 김 전 차관 사건과 연결 짓는 보도가 나가는 것을 보고 참 비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때는 동지라고 감싸더니 나중에 자기편이 아니라고 그렇게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박 변호사는 "윤 총장의 이름까지 거명한 소위 ‘윤중천 면담보고서’는 결국 내부의 누군가 의도적으로 언론에 먼저 흘렸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왼쪽)과 건설업자 윤중천씨. 연합뉴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왼쪽)과 건설업자 윤중천씨. 연합뉴스

이 면담보고서는 ‘김학의 재수사’의 정당성을 알리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이규원 검사는 김학의 사건을 맡은 지 한 달 뒤인 2018년 12월 26일 서울 강남의 모 호텔에서 최모 검사 및 수사관 한 명과 함께 오후 2시 30분부터 4시간가량 윤씨와 만난 뒤 문제의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윤씨가 면담 녹음을 거부한 탓에 보고서는 이 검사 등의 기억을 복기해 요약한 형태로 정리됐다”고 한다.

이 검사 등 조사단의 질문은 무엇이며 이에 대한 윤씨의 정확한 발언이 무엇인지 증빙할 수 있는 녹취록이나 녹음파일이 존재하지 않다는 게 내용의 신빙성을 놓고 두고두고 논란을 빚은 이유다. 박 변호사는 “윤씨가 보고서대로 발언했다고 하더라도 사실관계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며 “그런데도 관련 내용이 여과 없이 언론에 보도됐다”고 지적했다.

“책임 피하려 그만뒀다…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박 변호사는 뒤늦게 이 같은 대검 진상조사단의 문제점을 털어놓은 이유에 대해 “외부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내부적으로 함께 싸워나가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책임이 나에게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말 창피한 얘기지만 팀에서 나온 건 ‘누군가 내용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여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 역시 여기에 대한 평가(비판)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기자들은 핵심 취재원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분명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이었고, 그랬더라면 기자들까지 이후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회에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라고도 했다.

중앙일보는 박 변호사의 주장과 관련해 이규원 검사의 반론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이 검사는 7일까지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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