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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부터 풀라는 미국…‘반일 4년’ 한국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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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노조 지도자들을 만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한·미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다. [AP=연합뉴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노조 지도자들을 만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한·미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다. [AP=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한 과정에서 한·일 관계가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지만 미국은 한·일 관계 개선을 동맹 강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한·미·일 안보 공조 강조 #한·미 동맹 강화 절박한 문 대통령 #위안부 합의 등 최근 기류 변화 #“미국 중재 계기, 한·일 관계 개선을”

익명을 원한 외교 소식통은 18일 “조 바이든 행정부도 한·미 동맹 강화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전에 먼저 한국이 일본과 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한·일 갈등은 대중국 견제의 핵심 기제인 한·미·일 안보 공조를 저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문 정부 출범 이후 약 4년간 쌓인 양국 간 악재다. 지난 9일 취임한 정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의 첫 통화가 전례에 비해 늦어지는 실정이다. 교도통신은 지난 13일 일본 정부 고위 당국자가 “정의용 장관과 만나더라도 ‘춥네요’ 정도의 이야기밖에 할 게 없다”고 말했다며 “일본 정부와 여당 내 혐한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2일 부임한 강창일 주일대사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 모테기 외무상과의 면담 일정을 잡지 못했다.

한·일 관계

한·일 관계

과거사 문제로 일본을 압박하기 위한 문 정부의 ‘반일 프레임’이 관계 개선을 위한 선택지를 제약하고 있다. 먼저 문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정부 간 공식 합의이므로 재협상을 요구하진 않겠다”(2018년 1월 강경화 외교부 장관)면서도 “합의는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며 최종적 해결이란 합의 내용을 부정했다. 일본 정부의 예산 10억 엔(약 105억원)으로 세운 화해·치유재단도 해산했다. 하지만 최근 기류가 급변했다. 문 대통령은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2015년 합의는 공식 합의였다. (일본 정부의 위안부 피해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일본 측에선 저의를 의심하는 분위기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부에 따라 합의를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다는 불신을 해소하려면 한국 정부가 먼저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며 “배상 문제나 민간 영역의 일도 정부가 나서 해결할 용의가 있다고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둘째, 문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의 중대 하자로 꼽은 피해자 중심주의 위배도 정부를 제약한다. 이 말대로 하려면 지난달 법원의 배상 판결에 따라 한국 내 일본 정부 자산을 현금화해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사법 정의를 완성해야 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구현하려면 한·일 관계 악화를 감수해야 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풀려면 피해자 중심주의를 지키기 힘든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은 “정부는 피해자들의 의견을 듣고 중재하는 것으로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을 실현하면서 거시적 관점에서 국익과 외교 환경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피해자들이 납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셋째,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한·일 관계를 중시하며 방관하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지난 12일 “한·일 관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의 적극적 중재만큼 강한 추동력은 없다”며 “이를 계기로 대화의 실마리가 마련되는 분위기인 만큼 우리 정부는 과거사 문제에서 진일보한 제안을 하는 등 전향적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박현주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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