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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의료법 알아야 환자들도 피해 없죠"

중앙일보

입력

"이젠 의대생들도 법을 공부하고 의료 현장에 나가야 합니다. 의료분쟁 소송은 갈수록 늘어나고, 생명공학 등 의료.보건 분야의 법규도 복잡다단해지고 있습니다. 임상의가 되건, 기초의학자가 되건 간에 관련 법률지식이 부족하면 자신이나 환자가 예기치 않게 피해를 볼 수 있고, 오랫동안 진행해온 귀한 연구가 햇볕도 못 보고 사장될 수 있습니다."

연세대 의대의 박길준(朴吉俊.65).손명세(孫明世.50).이경환(李慶桓.47).백선우(白善宇.34)교수 등 네명은 법률 전공자다. 朴교수는 법학박사이고, 李.白교수는 변호사다. 유일한 의대 출신인 孫교수도 의료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땄다. 이들은 의대생들에게 법을 가르쳐야 할 당위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연세대는 1998년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의대.대학원.보건대학원에 의료법 윤리과정을 신설했다. 법대.신학대.문과대 등 6개 단과대 교수들이 강의를 맡았다.

당시 의대에 재직하고 있었던 孫교수가 주도했고, 법대 학장이었던 朴교수가 많은 도움을 줬다. 이때의 인연으로 朴교수는 지난달 정년 퇴임한 뒤에도 의대 초빙교수로 강의 하고 있다.

교수들은 그러나 강의만으론 부족함이 있음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그들에겐 법률 실무경험이 없었다.

이에 따라 朴.孫교수는 유능한 변호사를 교수로 초빙키로 하고 2년 전 이경환 교수를 영입했다. 서울대 법대 및 사법시험 27회 출신인 李교수는 교수 제의를 받고는 주저없이 15년 간의 변호사 생활을 정리했다. 환경.의료법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미 연세대에서 보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해놓은 상태였다.

"변호사 시절 겸임교수로 대학에서 강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의 지식과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매우 보람있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변호사 때보다 수입이 크게 줄어들텐데 가족이 반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李교수는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을 집사람이 더 원했다"면서 "앞으로 20년 이상 교수 생활을 해 교원 연금을 받는 게 목표"라고 답했다. 그는 의료소송법과 보건의료법을 강의한다.

이번 학기 들어 李교수에게 후배가 생겼다. 백선우 교수다.

그는 서울외국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예일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따냈다.

석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병원 경영'. 의사 가문의 후손다운 주제였다. 白교수의 할아버지는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박사다. 인제대 설립자인 백낙조 박사가 아버지며, 백낙환 백병원 이사장이 당숙이다.

그러나 白교수는 '병원 경영'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따낸 뒤 실리콘 밸리에서 6년간 변호사로 활동했다. 연세대 의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로스쿨 스승인 노정호(盧廷鎬)교수의 권유 때문.

지난해 여름 미국 보건.의료법에 밝은 교수를 찾아달라는 朴.孫교수의 부탁을 받은 盧교수는 주저없이 그를 추천했다.

"평소 교수의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제의를 받고 별로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국 생활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뿐이었습니다."

지난 15일 첫 교수 월급을 받았다는 그는 "변호사 수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즐겁고 보람이 있어 괜찮다"며 웃었다. 미국 변호사 시절 그의 연간 수입은 40만달러(약 4억8000만원)를 웃돌았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엔 변호사가 50여명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기능을 하는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에는 한명의 법률가도 없습니다. 의료가 과연 법과 따로 떨어져 있는 분야일까요. 의학교육기관과 정부가 다함께 생각해봐야 할 대목입니다."

네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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