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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배송? 농협은 ‘빛의 배송’한다” 이성희 회장의 청사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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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주년을 맞은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농협이 올해 주문부터 2시간 안에 식재료를 배달하는 ‘싱싱배송’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한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농촌의 농축산물을 농협이 다 팔아준다는 생각으로 ‘유통 혁신’에 임할 것”이라며 “농축산물 유통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45%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진행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다.

취임 1주년 인터뷰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농협은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를 앞두고 있다. 유통 사업에선 후발 주자인 쿠팡과 마켓컬리의 위협을 받고, 금융업은 핀테크(금융+기술) 기업에 쫓기고 있다. 지난해 ‘공적 마스크’ 공급 창구로서 빛을 냈던 농협의 유통망을 올해 한 차원 업그레이드한다는 게 취임 1주년을 맞은 이 회장의 계획이다.

왜 유통 혁신인가.
국내 농업생산액은 50조원이 넘는데, 60년 역사를 가진 농협이 유통하는 물량이 1년에 8조원에 못 미친다. 마켓컬리는 5년 만에 매출 1조원 클럽에 든다고 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온라인 쇼핑 거래 규모는 15조원이 넘어가고 있다. 농협이 농축산물 유통 시장 점유율의 45%는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발 빠르게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지난달 22일 농협 성남유통센터의 디지털풀필먼트센터(DFC)를 방문해 디지털 전환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농협중앙회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지난달 22일 농협 성남유통센터의 디지털풀필먼트센터(DFC)를 방문해 디지털 전환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농협중앙회

구체적인 계획은?
우선 오프라인 매장을 ‘2시간 싱싱배송’이 가능한 디지털 풀필먼트 센터(DFC)로 전환할 계획이다. 쿠팡은 ‘로켓배송’을 한다고 하는데, 농협은 빛의 속도로 배송할 역량을 갖출 것이다. DFC를 처음으로 적용한 성남유통센터는 현재 하루에 150건의 주문을 처리할 수 있는데, 앞으로 하루 1000건 이상의 온라인 주문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올해 안에 11개 유통센터에 DFC를 추가 적용한다. 2019년 말까지 100만명 수준이던 농협몰 회원은 현재 340만명을 넘겼다. 향후 500만명 이상으로 늘리는 게 목표다.
최근 서울 신촌에는 무인 매장도 열었다.
‘한국판 아마존 고’라고 불러달라. 인공지능(AI) 기반의 무인 매장이 앞으로 대세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시범 점포로 운영하고 있다. 몇 달 안에 매출, 고객 만족도 등의 성과를 보고 전국 확대 가능성 등을 판단할 계획이다. 최근 아마존이 SK와 손을 잡고 한국에 진출한다는 소식을 주시하고 있다.
1일 서울 신촌에 개장한 농협 하나로마트 인공지능(AI) 스토어. 농협중앙회

1일 서울 신촌에 개장한 농협 하나로마트 인공지능(AI) 스토어. 농협중앙회

대형 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농협의 차별점은?
고품질의 농산물을 공급해 소비자 만족도를 올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농협은 농가소득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일반 업체는 농산물을 판매해 이익을 챙기지만, 농협은 이 이익이 농가소득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국내 평균 연간 농가소득이 약 4100만원인데, 이중 농업소득(농업 활동으로 얻는 소득)은 1000만원 안팎에 그친다. 농업소득을 1500만~2000만원 수준으로 올릴 수 있다면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격차도 더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농협의 유통 개혁도 이 농업소득 증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에는 농업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와 사상 최장 기간 이어진 장마까지 겹치며 농업계도 위기의 한 해를 보냈다. 농축산물, 화훼 소비 촉진을 위해를 위해 직접지원 활동을 벌였고, 은행을 통해 13조원 이상의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상 금융지원을 실시했다. 지난해의 위기를 계기로 올해부터유통·디지털 분야 혁신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농업인 소득 안정을 위해 다른 계획도 있나.
중소·청년 농업인을 위한 ‘농협형 스마트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팜 자재와 관리 서비스뿐만 아니라 생산물 판로와 금융 지원까지 농협이 제공한다. 구식 농법으로는 생산량이 늘지도 않고 고품질 농산물이 나오지도 않는다. 스마트팜의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데까지 농협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실제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농장을 방문해보니, 고추나무 하나에서 5년 동안 13만개의 고추를 딴다고 하더라. 14평짜리 땅에서 연 매출 5000만원을 낸다는 얘기다. 특히 장애인이나 노약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스마트팜 시설을 귀농 희망자 등에게 보급하려고 한다.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스마트팜은 대기업이 진출해 농업인의 소득을 뺏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동안 스마트팜은 높은 투자비용 문제로 기업농 등 대규모 농가 위주로 보급돼, 중소 농업인이 새로운 농업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앞으로도 대기업 자본이 농업에 진출할 가능성은 99%라고 본다. 농업이 지금 변하지 않으면 농민의 일자리는 대기업에 뺏길 것이다.
무엇보다 농촌 인구가 줄어들며 소멸 위기에 빠졌다.
농업인구 대부분이 60세 이상이다. 농협 구성원들에게도 농촌사회가 지속해야 농협의 존재가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농가 고령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협은 매년 100명 규모의 창업농을 육성하는 청년농부사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청년 농업인이 실제 귀농해 잘 정착했는지 사후관리 전담직원을 둬 관리하고, 농협 교육을 정부인증 과정으로 추진해 자금 심사 등에서 가점을 주는 등의 혜택을 부여할 계획이다.
올해 농협 금융지주 운영 방향은.
유통부문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전환을 강조할 방침이다. 농협 은행이 다른 금융기관보다 규모 등의 면에서 뒤질 게 없는데, 디지털 측면에서는 위협을 감지하고 있다. 영업점에 방문하는 고객은 눈에 띄게 줄고, 핀테크·빅테크 업체가 첨단 디지털 기술을 앞세워 금융업에 진출했다. 농협이 ‘민족은행’이라는 과거의 영업 행태에 안주하면 젊고 빠른 디지털 고객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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