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 고로 움직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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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테네시주에 사는 제시 설리번은 2년 전 전력선 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현재 그의 두 팔은 두가지 종류의 전동 의수가 대신하고 있다.

오른팔은 옛날 방식으로, 턱을 이용해 목 밑 부위에 달린 스위치를 켜야 물건을 쥐거나 놓을 수 있다. 왼팔의 전동 의수는 작동방식이 다르다.

왼팔로 이어지는 신경세포들의 말단을 가슴근육으로 붙여, 왼팔을 움직이고 싶은 명령을 가슴근육으로 보내게 시술됐다. 인공 갈비뼈에 장착된 센서는 근육의 수축을 감지해 왼쪽 의수로 무선 신호를 보낸다.

설리번이 물건을 쥐고 싶으면 신호를 전송받은 의수의 집게가 움직여 팔을 펴 실제 물건을 잡을 수 있는 방식이다. 이 수술을 집도한 시카고 재활병원의 토드 퀴켄 박사는 "설리번은 생각만으로 의수를 움직이는 최초의 인간"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생각은 뇌세포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생각뿐 아니라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뜀박질을 할 때도 뇌는 수많은 신호를 쉴새 없이 각 운동기관에 내려보낸다.

그 과정은 너무나 복잡해 인간 스스로 뇌의 전 과정을 알 수는 없지만 설리번의 예처럼 인간의 생각을 컴퓨터나 기계에 접속하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지난 10월 온라인 과학저널 'PLoS' 창간호에 실린 미 듀크대 연구팀의 논문은 '무형'의 생각을 '유형'의 결과물로 바꿀수 있다는 가능성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이 연구를 주도한 미겔 니콜렐리스 박사는 논문을 통해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멀리 떨어진 로봇의 팔을 움직이게 했다"고 발표했다.

니콜렐리스 박사는 붉은털 원숭이 두마리의 두개골을 연 뒤 머리카락보다 가는 탐침을 한마리의 원숭이에게는 96개를, 다른 한마리에게는 3백20개를 운동과 관계되는 5군데의 대뇌피질에 나눠 살짝 꽂았다. 0.3㎜의 간격으로 탐침을 꽂고 컴퓨터 게임기 앞에 앉혔다.

컴퓨터 화면에 하나의 반점이 나타나고 가끔 타깃이 뜨면, 원숭이에게 조이스틱을 움직여 반점을 타깃에 맞히는 게임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타깃에 적중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원숭이 뇌의 전기신호를 면밀히 분석, 같은 형태의 전기신호가 나오면 반대편 실험실의 로봇 팔이 움직여 물체를 쥘 수 있도록 설계했다.

조이스틱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운동만 허락된 원숭이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었고 타깃이 나타나면 조이스틱으로 반점을 움직였다.

원숭이가 게임에 익숙해졌을 무렵 니콜렐리스 박사는 조이스틱과 컴퓨터의 연결을 끊고 조이스틱이 있을 때와 같은 전기신호 양상이 발생할 경우 반점을 타깃으로 움직이게끔 조정했다. 원숭이는 반점의 움직임이 조이스틱과 상관없이 생각만으로 타깃에 적중시킬 수 있음을 알아챘고, 결국 로봇 팔을 움직여 물체를 잡을 수 있었다.

전기신호를 이용해 동물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실험은 이보다 앞서 발표됐다. 뉴욕주립대 산지브 탈워 교수팀이 지난해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쥐의 뇌 좌.우측에 탐침을 꽂고 원격조종으로 전기자극을 줘 5백m에 이르는 미로를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에게도 이 같은 실험은 수차례 있어왔다. 주로 척추가 손상된 환자나 근육이 점점 위축되어 가는 루게릭병 환자들이 대상이다. 이들은 의사소통에 대해 누구보다 강렬한 욕구를 느낀다.

이들의 의사를 컴퓨터에 옮기려는 시도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했다. 미 클리블랜드 케이스웨스턴대의 헌터 페컴 박사가 뇌 신경세포의 전기신호를 조절해 컴퓨터 스크린의 마우스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2000년 미 애틀랜타 조지아텍의 골드웨이드 교수팀은 3명의 루게릭병 환자에게 탐침을 꽂아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이름은 물론 '추워','더워','도와줘','불편해' 등의 단어를 화면에 띄웠다고 발표했다.

탐침을 꽂기 위해서는 수술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피실험자를 다치게 할 위험도 크다. 그래서 최근에는 뇌파를 이용해 생각을 전달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지난달 초 미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신경과학회의에서 뉴욕주립대 조너선 월포 교수팀은 척추손상 환자의 머리에 뇌파를 감지하는 센서를 부착해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옮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뇌파의 활용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크다. 아주대 의대 정민환 교수는 "뇌파는 여러 종류의 신경세포가 나타내는 반응의 총합산에 가까워 탐침 이상의 정확도를 나타내기 힘들 것"이라며 "이에 따라 칼슘이온의 정밀한 움직임으로 뇌세포의 활동과 결과물로서의 행동을 예측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은 우선 장애인에게 혜택이 돌아갈 전망이다. 사지를 못 쓰는 장애인은 생각만으로 불을 끄거나 켤 수 있고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휠체어도 연구개발 중에 있다.

좀더 발전할 경우 전투기 조종사의 뇌와 전투기의 회로를 연결, 종합조정실에 앉아 전투기의 조종도 가능하다. 인명손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점이다.

전투기에서 찍은 영상을 조종사의 대뇌에 곧바로 투영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다. 미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1990년대 초반 2년간 2천4백만달러로 군사용 프로젝트를 시작해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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