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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재 발탁 막는 인사청문회 이대론 안된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22호 30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현 정부 들어 야당의 동의 없이 임명된 27번째 장관급 인사가 되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인사청문회 무력화가 문제”라고 했다. 적확한 비판이다. 인사청문회가 국무위원으로까지 확대된 2005년 이래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경우가 노무현(3명)·이명박(17명)·박근혜(10명) 정부 때를 뛰어넘었으니 ‘역대급’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인사권 남용 견제란 명분 퇴색 #청문회 기피에 정치인·관료들만 득세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 능력에 집중해야

그렇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건 부당할 수 있다. 그 사이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 160건 가까이 발의된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인사청문회가 이대론 안 된다는 국회 차원의 진단일 수 있어서다.

“어떤 정치 시스템도 당초의 동기는 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악으로 바뀐다”는 금언이 있듯이, 인사청문회도 한때 정치개혁 과제였다.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국회 차원에서 견제하자는 취지였다. 실제 제도 도입 이래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해선 엄격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학습이 이뤄진 성과가 있다.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 11개월에 불과했던 장관들의 재임 기간이 수년으로 늘면서 행정 안정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한계도 명백해졌다. 무엇보다 후보자의 업무 적격성이나 정책 능력보다 도덕성 검증에 매몰된다는 점이다. 압축성장에 따라 도덕 기준도 압축상승했는데도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한다. ‘몇 명 낙마’를 목표로 한 야당의 거센 공세에 청와대 검증은 역부족이었다. 현 정부도 초기엔 5대 인사 배제 기준을 내세웠다가 곧 7대로 늘렸고 이마저도 지키지 못했다. 이제 “뽑을 사람이 저리 없냐는 인사권자에 대한 원망부터 수치를 감수하면서까지 공직에 오르고 싶어하는 후보자의 권력 의지에 대한 개탄까지”(장철준 단국대 교수) 하는 게 현실이다.

인사 자체도 지난한 과정이 됐다. 현 정부의 조각(組閣)이 출범 후 6개월 12일 만에 완료된 게 그 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를 뽑기 위해 30명 이상에게 연락했다는데 그렇게 뽑힌 인사도 낙마했다. 박근혜 정부 때엔 미국 벨연구소 최연소 사장 출신의 한국계 김종훈씨가 발탁됐으나 복수국적 문제에 시달리다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청문회 기피 또는 통과 가능성 때문에 최고의 인재 대신 범재가, 때론 함량 미달 인사가 발탁되고 지금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장관직을 독점한다. 민간의 역량, 그것도 최고의 인재를 배제해도 될 만큼 국가 운영이 한가한가. 또 물러나야 할 장관이 후임자를 못 구했다는 이유로 장관직을 유지하는 코미디도 벌어진다. 대통령이 야당의 동의 없이 임명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야당은 더 ‘한 방’에 기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결국 인사청문회는 당초 취지에서 크게 이탈해 국회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지도, 대통령이 최고의 인재를 발탁할 수도 없는 제도로 변질됐다.

진정 손을 볼 때가 됐다. 내년 5월 등장할 차기 정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다행히 정치권에서 개혁 방향에 대한 의견 수렴이 이뤄진 상태다. ▶도덕성과 관련된 부분은 비공개, 업무 관련성은 공개 청문회로 하고 ▶공직자윤리국·연방수사국·국세청 등 다양한 기관이 참여하고 후보자 주변에 대한 탐문조사까지 미국처럼 사전 검증을 강화하고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허위 진술은 임명 후에라도 상응한 책임을 지도록 법제화하자는 것 등이다.

실행의 일차적 책무는 집권 세력인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과거 야당시절 인사청문회를 무리한 정치공세의 장으로 이용, 지금의 ‘변종’을 만들어낸 데 대한 성찰적 입장 표명과 함께 야당에 협조를 구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과정이 너무 정쟁”이라며 야당을 비난하기에 앞서 마음을 다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야당도 만년 야당을 작정한 게 아니라면 응해야 한다. 인사청문회, 이대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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