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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명부에 '12가34나'···전번 대신 '코로나 안심번호' 쓰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하루 125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난해 9월 23일,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의 한 음식점에선 손님인 척 가장해 출입자 명부를 휴대전화로 촬영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식당 직원이 남성을 발견하고 “사진을 지워달라”고 요구하자 돌연 달아나다 붙들려 종로경찰서에 넘겨졌다. 남성은 “실수였다”고 했지만, 그의 휴대전화에선 다른 업장에서 찍은 수기 명부도 발견됐다.

개인정보위, 숫자4자리+한글2자리 안심번호 신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업무계획.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업무계획.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이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코로나19 개인 안심번호’를 도입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지면서 수기명부 등을 작성하는 게 일상화됐지만 이후 “낯선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온다”는 등 시민들의 피해 사례가 알려지면서다. 지난해 말 충남지방경찰청은 “코로나19 출입명단을 팔겠다”며 개인정보 700만건을 허위로 작성해 팔아넘긴 사례를 적발하기도 했다. 출입명부를 사겠다고 나선 사람도 많다는 얘기다.

26일 개인정보위의 ‘2021년 업무계획’에 따르면 내달부터 도입되는 개인 안심번호는 최초 1회만 발급해 코로나19 종식 시까지 계속 이용할 수 있다. 숫자 4자리와 한글 2자리로 이뤄진다. 개인 고유의 정보인 주민등록번호나 차량 번호판과 유사한 셈이다. 현재 네이버나 카카오톡 등 ‘QR 체크인’ 하단에 안심번호가 표시되는 식으로 발급할 수 있다. 최영진 개인정보위 부위원장은 “디지털 취약계층도 1회만 발급하면 외우거나 적어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루다 논란에 ‘AI 수칙’ 신설…정보보호 등급은 ‘신호등’으로

동성애 혐오 논란을 야기한 이루다와 한 이용자의 대화. 이용자가 “레즈 싫어?”라고 묻자 이루다는 “죽기보다 싫어”라고 답한다. [페이스북 캡처]

동성애 혐오 논란을 야기한 이루다와 한 이용자의 대화. 이용자가 “레즈 싫어?”라고 묻자 이루다는 “죽기보다 싫어”라고 답한다. [페이스북 캡처]

최근 혐오발언, 카카오톡 대화 유출 논란을 빚은 ‘이루다’ 등 인공지능(AI) 서비스 관련 개인정보 침해도 대책도 마련했다. 오는 1월말까지 ‘AI 환경의 개인정보보호 수칙’을 신설하기로 했다. 최근 ‘연애의과학’ 앱에서 수집된 카카오톡 대화를 제3의 서비스인 이루다 개발에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용자에게 개인정보 이용 목적이 명확히 통보되지 않았다”, “비식별처리가 안된 것 아니냐”는 등 문제가 제기된 게 영향을 미쳤다. 개인정보위는 개인정보 활용 범위 및 보유 기간, 비식별처리 활용 등 핵심 수칙을 수록하기로 했다.

그간 깨알같이 작게 표시돼 “형식적인 동의 절차”, “동의 만능주의”라는 지적을 받은 개인정보 수집 및 동의·이용약관도 시각적으로 알기 쉽도록 ‘신호등 표시제’를 도입한다. 이용자가 PC 브라우저에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웹사이트의 개인정보보호 수준을 위험·주의·특이사항 없음 등 색으로 알리는 식이다. 개인정보위는 “사물인터넷, AI 등은 개인정보가 자동·반복적으로 수집돼 그때마다 사전동의를 적용하는 게 곤란하다”며 “하반기엔 ‘알기 쉬운 동의서 편람’을 발간해 동의서 표준 양식 개발·배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을엔 “가명정보 지원센터 만들고 전문가 450명 양성”

지난달 9일 제8차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는 윤종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뉴시스]

지난달 9일 제8차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는 윤종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뉴시스]

지난해 8월부터 데이터3법(개인정보 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가명정보 수요가 높아진 것과 관련, 오는 10월부터는 ‘가명정보활용 지원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가명정보란 개인정보 중 일부를 삭제하는 등 비식별화해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한 정보다. 가명정보를 처리, 결합하기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 환경을 제공하고 실무 기술지원까지 가능하도록 한다. 4~11월 전문인력 450명을 양성한다.

한편 지난해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따라 8월 장관급 기관으로 독립한 개인정보위는 이번 첫 업무계획을 발표하게 됐다. 업무계획은 새해 주요 현안·과제를 보고하는 절차다. 개인정보위는 방송통신위원회와 금융위원회, 행정안전부 등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던 개인정보 보호 업무를 전담하게 되면서 인력도 60명→150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최영진 부위원장은 “발표한 주요 과제는 대부분 법 제도의 개선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며 “조속히 시행될 수 있도록 제2차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역점을 두고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기반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올해는 개인정보정책의 전 과정에서 국민, 산업계, 정부 등과 적극적으로 소통·협력해 제대로 일하는 출범 원년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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