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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브리저튼' 정주행할 당신에게...흑인 여왕·공작 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브리저튼'의 한 장면. 흑인 남자 주인공과 백인 여자 주인공의 스토리다. [르제 장 페이지 인스타그램]

'브리저튼'의 한 장면. 흑인 남자 주인공과 백인 여자 주인공의 스토리다. [르제 장 페이지 인스타그램]

지금 세계에서 가장 핫한 드라마를 꼽으라면 ‘브리저튼(Bridgerton)’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넷플릭스에서도 22일 현재 톱10 순위 중 7위다. 지난달 전 세계 넷플릭스에서 방영을 시작했고,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6300만회 이상의 시청 횟수를 기록했다. 폭발적이다. 18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브리저튼 가문의 맏딸 다프네가 당대 여성의 최대 목표인 결혼을 위해 겪는 곡절을 그렸다.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이 썼을 법한 내용에 미국 드라마 ‘가십걸’의 내레이션 형식을 빌려왔다는 평을 듣는다. 여주인공이 결혼에 매몰되지 않고 자아를 찾아가는 방식의 스토리텔링으로 호평 받는다.

그러나 내용 외에도 전 세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요소는 또 있다. ‘남녀 주인공=백인’이라는 시대극의 캐스팅 공식을 깼다는 점이다. 남자 주인공인 헤이스팅스 공작을 연기하는 르제 장 페이지(31)가 대표적이다. 영국인 아버지와 짐바브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적확한 영국식 영어로 당대 최고의 신랑감을 연기한다. 페이지는 이달 초 미국 라디오 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흑인인 내가 이 역할을 연기할 수 있는 것은 멋지고도 중요한 일”이라며 “(인종에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매력적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말했다.

르제 장 페이지의 인스타그램.

르제 장 페이지의 인스타그램.

‘브리저튼’ 시청자들을 놀라게 한 또 다른 흑인 주인공은 샬럿 왕비(1744~1818)를 연기한 골다 로슈벨(51)이다. 샬럿 왕비라는 캐릭터도 흥미롭게 설정된다. 실제 역사 속에서 영국 조지 3세의 부인이었던 샬럿 왕비를 두고 역사학자들 사이에선 “영국 왕조 사상 최초의 혼혈”이라는 설이 제기됐다. 샬럿 왕비의 초상화에서 그의 피부가 다소 어둡게 표현됐다는 점 등이 증거로 제시됐다. 역사학자들은 그가 아프리카계 포르투갈인의 후손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명확한 근거가 없어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던 이 주장을 ‘브리저튼’은 과감히 차용한다. 극 중 주요 흑인 캐릭터인 레이디 댄버리가 “(샬럿 왕비는)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다”며 “왕이 (흑인인) 그와 사랑에 빠졌기에 우리가 이렇게 될 수 있었다”라고 말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골다 로슈벨이 샬럿 왕비의 초상화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 [골다 로슈벨 인스타그램]

골다 로슈벨이 샬럿 왕비의 초상화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 [골다 로슈벨 인스타그램]

극 속 샬럿 왕비는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유색인종의 평등을 실현한다. 드라마에서 샬럿은 흑인 등에게도 공작ㆍ백작ㆍ영주가 될 기회를 열어준다. 로슈벨은 지난해 12월 미국 매체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브리저튼은 유색인종을 (계급) 삼각형의 맨 위에 놓음으로써 경계를 넓혔다”며 “흑인도 사랑하고, 열정적이고,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로슈벨은 남미 대륙의 작은 나라 가이아나에서 현지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뒤 5세에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지난 20일 역시 흑인 모델인 나오미 캠벨의 유튜브 ‘노 필터 위드 나오미’에 출연해 “서로 다른 인종이었던 부모님이 사랑하는 것이 당시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부모님이 아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브리저튼' 공식 포스터 중 하나. [골다 로슈벨 인스타그램]

'브리저튼' 공식 포스터 중 하나. [골다 로슈벨 인스타그램]

흑인을 주요 캐릭터로 설정했다는 점과 함께 ‘브리저튼’은 일각에선 ‘페미니스트 시대극’이라고도 불린다. 여성 캐릭터가 당대의 결혼관에 맞서 고민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는 모습도 그리기 때문이다. 남자주인공인 페이지는 NPR 인터뷰에서 “제인 오스틴과 (『제인 에어』저자인) 샬럿 브론테. (『폭풍의 언덕』저자) 에밀리 브론테처럼 당대엔 흔하지 않았던 여성 작가들이 있었고, 이젠 페미니스트 적인 시각으로 시대극을 볼 때도 됐다”며 “내 역할이 남성성을 강조하긴 하지만 양성 평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연기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여성 주도적 캐릭터는 역시 여자 주인공인 다프네가 대표적이다. 그는 성인이 돼 사교계에 막 입성한 다프네를 연기했다. 좋은 남편을 만나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꿈인 다프네는, 밀려오는 결혼 압박에 별 관심도 없던 공작 사이먼과 계약 연애를 시작한다. 이후 여러 풍파를 겪으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또 가르쳐준다.

다프네를 연기한 피비 디네버(26)는 지난해 12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대본을 보고 가장 흥미로웠던 건 가부장적인 시대적 맥락 안에서도 여성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간다는 점이었다”며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전수진·김선미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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