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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박차고 애니메이터로…픽사 첫 흑인 주인공 만들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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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애니메이션 ‘소울’에 참여한 김재형 애니메이터. 왼쪽은 그가 작업한 픽사의 첫 흑인 주인공 조.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애니메이션 ‘소울’에 참여한 김재형 애니메이터. 왼쪽은 그가 작업한 픽사의 첫 흑인 주인공 조.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의 신작 ‘소울’(20일 개봉)에서 주인공 캐릭터를 담당한 한국인 애니메이터가 있다. 연출을 맡은 피트 닥터 감독과 ‘업’, ‘인사이드 아웃’에 이어 세 번째로 뭉친 김재형(48) 애니메이터다. 12일 그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애니 ‘소울’ 조 캐릭터 담당 김재형 #서른 넘어 애니 공부 위해 미국행 #픽사 취직, 토이스토리·업 만들어 #“좀더 여유 갖고 즐기며 살고 싶어”

‘소울’은 뉴욕의 음악 교사 조(제이미 폭스, 이하 목소리 출연)가 평생 꿈꿔온 재즈 무대에 서게 된 그 날, 추락사고로 그만 영혼들의 세계로 가게 되고, 환생을 원치 않는 까칠한 영혼 22(티나 페이)를 만나 생사를 넘나든 모험에 나서는 내용이다. 환상적인 그림체와 아름다운 재즈 선율을 쫓다 보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가’라는 묵직한 질문에 다다른다. 꿈이 맹목적인 목표가 되는 순간 삶을 좀먹을 수 있다는 메시지도 던진다.

40대 흑인 남성 조와 영혼 상태의 조, 고양이가 된 조에 더해 영혼 22의 몸동작·감정표현 등 캐릭터 작업을 김씨가 맡았다. 한국에서 의사로 일하다 서른 넘어 애니메이터의 꿈을 좇아 미국행 유학길에 올랐던 그에겐 이번 영화가 더욱 각별했단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즐기면서 살라는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해서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그가 레지던트 1년차에 안정된 삶을 박차고 나온 것도 “더 즐겁게 할만한 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2003년 미국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에 입학해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공부했고, 2006년 픽사에 인턴으로 취직해 ‘라따뚜이’ 등에 참여했다. 이후 게임회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도 잠시 몸담았지만 2008년 픽사로 돌아와 ‘업’, ‘토이 스토리’, ‘카’ 시리즈, ‘몬스터 대학교’, ‘인크레더블 2’, ‘온워드’ 등을 만들었다.

‘소울’은 그에게 도전의 의미도 컸다. 열심히 꿈을 좇는 기존의 희망적인 픽사 영화들에 비해 분위기가 어두웠기 때문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보곤 놀랐어요. 관객한테 쉽게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도록 조심해서 작업했죠.”

픽사에선 처음으로 주인공이 흑인인 작품이다. 그는 “다양성을 강조해온 픽사의 노력에 정점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공동 연출자 캠프 파워스를 비롯해 흑인 문화에서 자란 동료들의 조언과 실생활 영상을 참고해 극중 캐릭터의 세세한 ‘연기’에 반영했다.

‘업’, ‘인사이드 아웃’으로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두 차례 수상한 피트 닥터 감독은 픽사에서도 눈이 높기로 이름난 터. 조가 재즈밴드 오디션을 보는 장면이 가장 어려웠단다. 실제 피아노를 칠 때처럼 정확한 건반에 맞춰 손가락을 표현하고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존의 감정까지 담아내야 했다.

“감독님은 실제 피아니스트들이 피아노를 칠 때보다 훨씬 부드러운 몸 움직임과 꿈속에 있는 듯한 표정을 원했어요. 그렇게 되면 피아노 치는 느낌이 안 날 텐데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감독님 말씀이 맞았죠.”

‘소울’은 코로나19로 미국에선 극장 개봉 없이 지난달 디즈니의 OTT 플랫폼 ‘디즈니 플러스’로 공개됐다. 그는 “평소 아이들만 극장에 보내고 (자신은 애니메이션을) 안 보던 분들도 스트리밍을 통해 의외로 많이 보셨더라. 지금처럼 힘든 상황에서 이 영화가 소울푸드처럼 (마음을) 달래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극장 개봉하게 돼 기뻐요. 굉장히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방역수칙 잘 지키셔서 많은 분이 즐기고 힐링하면 좋겠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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