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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공장 일자리 생기니 2030 북적 “노인들만 있던 동네에 유치원이라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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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호 09면

인구 절벽 끝에 서다 - 인구 느는 소도시

22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직원들이 건설중인 건물들 사이로 출근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22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직원들이 건설중인 건물들 사이로 출근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저기 학교같은 건물 보이죠? 저게 유치원이래요. 노인들만 있던 동네에 유치원이라니.”

평택 고덕 신도시 가보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들어서 #5년간 20~30대 3만 명 몰려들어 #달성·천안 등도 눈에 띄게 활기 #주거·일자리 해결해야 인구 늘어

경기도 평택에서 1978년부터 운전대를 잡았다는 택시기사 박봉제(61)씨는 지난 15일 오후 5시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정문 앞에서 퇴근하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며 “장관이네, 장관”이라고 말했다. 공장 입구에서는 작업복을 입고 회사 출입증을 단 직원들이 몰려 나왔다. 자신의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찾고, 통근 버스에 줄지어 올라타느라 공장 앞은 순식간에 사람, 자전거, 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평택시는 행정구역상 경기도에 속하지만 서울보다 충청남도와 더 가까워 수도권이라고 보기는 애매한 지역이다. 하지만 최근 10년 동안 인구 유입이 활발한 도시 중 한 곳으로 꼽힌다. 2011년 42만명이던 인구는 지난해 53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2030세대 유입이 활발하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인구 현황을 살펴보면 2011년 12만 5873명이던 20~30대 인구는 지난해 15만 4127명으로 22.4% 늘었다. 기초지방자치단체 226곳 중 최근 5년 동안 2030 인구가 다섯번째로 많이 증가한 도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구도심인 평택종합버스터미널 앞은 전형적인 지방 소도시의 모습이다. 왕복 4차로 도로 양 옆으로 늘어선 3~4층 상가 건물 외벽엔 빛바랜 간판들이 들쭉날쭉 붙어 있다. 하지만 차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해 들어선 고덕면은 전혀 다른 분위기다. 막 포장을 마친듯한 6차로 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고 논과 비닐하우스가 차지하던 자리를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차지하고 있다. 고덕 신도시의 공인중개업소는 평일인데도 젊은 고객과의 상담으로 바쁜 모습이었다. 여섯번째 들어선 ‘향’ 공인중개사무소에서 간신히 최근 상황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한은숙 실장은 “인근 84㎡ 아파트의 실거래가가 지난해 말 9억 8000만원까지 올랐는데도 매물이 없어 못 들어갈 지경”이라며 “단지 안에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다 들어섰고 차로 20분 거리에 안성 스타필드까지 생겨 아이 키우는 신혼부부에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2003년 미군기지 이전을 계기로 판교·동탄 등과 함께 2기 신도시로 선정된 1300만㎡ 규모의 ‘고덕국제신도시’는 2015년 삼성전자가 289만㎡의 땅에 반도체 생산라인과 바이오단지 조성을 결정하면서 날개를 펼쳤다. 현재 삼성 임직원에 협력사, 건설업체 직원까지 합치면 약 3만명이 일하고 있다. 이미 가동중인 1라인과 2라인 일부에 이어 앞으로 3~6라인까지 완공되면 젊은 층의 유입에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평택시 도시개발과 관계자는 “고덕 주민들이 모두 주변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는 건 결국 믿을만한 일자리의 효과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도 비슷한 상황이다. 대구시 전체의 2030 인구는 2011년 이후 10만명 넘게 빠져나간 반면 달성군은 2015년 5만 3000여명이던 20~30대가 지난해 기준 7만명을 넘어섰다. 전국 군 단위 기초자치단체 중 2030 세대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평균 연령이 38.8세다. 달성군만 인구절벽을 비켜선 비결은 2018년 유가읍과 현풍읍에 걸쳐 조성된 대구테크노폴리스다. 김미정 달성군 지역인구정책과 팀장은 “현대와 롯데 계열사를 비롯해 100여개의 기업과 국책 연구기관이 들어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니 젊은층이 빠르게 모여들어 신도시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충남 천안시 서북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급으로 인구 증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불당·성성지구 등이 신흥 주거지로 자리잡으면서 최근 5년간 인구가 6만명 가까이 늘었다. 신미숙 천안시 인구정책팀장은  “KTX 등 교통이 발달하면서 일자리가 많은 아산이나 평택으로 출퇴근하기 적합한 위치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며 “최근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100대 1을 넘어설 정도”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일자리가 도시를 살린 경우는 드물지 않다. 경기도 파주시는 군사보호시설과 인접한 위치 탓에 대규모 일자리나 주거 공급 기회에서 번번이 소외됐다. 하지만  운정지구가 2기 신도시로 선정되고 2008년 문산읍 일대에 LG디스플레이가 들어서면서 반전을 이뤘다. 운정지구 내에만 4만 세대가 넘는 주택이 건설되면서 2011년 37만명대였던 파주시 인구는 현재 46만명을 넘어섰다. 젊은 직장인들이 자리잡으면서 합계출산율 역시 1.05명으로 경기도 평균(0.93명)을 웃돈다.

전문가들은 젊은이들이 살고 싶은 곳으로 발돋움하려면 매력적인 일자리 뿐만 아니라 안정된 주택까지 동시에 공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윤석 계명대 도시행정학 교수는 “일본의 경우 한 도시 안에 주거와 일자리를 모두 확보할 수 없는 경우 인근 도시와의 연계 네트워크를 강화해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진천군과 음성군을 묶어 건설한 충북혁신도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음성군에는 한국가스공사 등 공공기관과 주요 기업이 자리잡고, 진천에 신시가지를 만들면서 상생을 이뤘다. 진천의 20~30대 인구는 2015년보다 25%(4000명) 늘어나면서 출산율도 1.42명까지 높아졌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말로는 균형발전, 지역분산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서울 의존도가 크지 않냐”며 “서울 생활을 염두에 두고 경기도에만 신도시를 만들게 아니라 주거와 일자리를 함께 소화해 자생할 수 있는 지역별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승규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가 지금처럼 급감하는 상황에서는 단기간에 큰 파급 효과를 낼 수 있는 일자리나 주거 등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라며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이런 대규모 도시 개발 사업 기간을 얼마나 빨리 단축하느냐에 지방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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