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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0, 0, 0 … 우리 마을이 사라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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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호 08면

인구 절벽 끝에 서다

충남 부여 석성면은 2020년 신생아가 없다. 65세 이상 노인 비율을 34%로, 전국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지난 19일 한 노인이 전동 카트를 타고 석성면사무소 방향으로 갈 길을 재촉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충남 부여 석성면은 2020년 신생아가 없다. 65세 이상 노인 비율을 34%로, 전국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지난 19일 한 노인이 전동 카트를 타고 석성면사무소 방향으로 갈 길을 재촉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형님 어딜 다녀오셔?” “아, 조오기.”
지난 19일 오후 충남 부여군 석성면 증산리. 전동카트를 탄 80대 A씨와 보행기에 의지한 70대 B씨가 799번 지방도로와 이어지는 야트막한 언덕에서 만났다. B씨는 이 언덕을 오르며  네댓 차례 숨을 토하며 쉬었다. 어린아이들이 잘 안 보인다는 기자의 물음에 A씨는 “애들? 읎어. 팍 줄었어. 우리 마냥 노인네가 많여”라고 답했다. 이름을 물어봤다. 이들의 대답은 이랬다. “그건 알아서 모혀. 바로 낭중에 죽을 텐디.”

읍·면·동 43곳 출산 제로 현장 #부여 석성면, 초등교 폐교 걱정 #일손 없어 80대가 상추 뽑아 #춘천 북산면 2년 만에 또 ‘출생 0’ #시·군·구 절반이 인구소멸 위험 #강북구 65세 이상 노인 비율 20% #특별시까지 초고령 사회로 진입

석성면은 지난해 ‘신생아 제로’다. 반면 사망 41명을 포함해 134명이 줄었다. 석성면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출산 지원 통장을 만들어 주는 정책에도 신생아가 없었다”며 “전출에 자연감소가 맞물리면서 인구 마지노선 3000명이 깨졌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연령별 인구현황에 따르면 석성면의 65세 이상 인구는 1003명. 전체의 34%에 이른다. 2011년(863명)보다 16% 늘었다. 0~14세는 같은 기간 422명에서 184명(전체의 6%)으로, 56% 낙폭을 보인다. 고령 인구 증가세보다 저연령층은 더 가파르게 줄고 있다. 이 와중에 자연감소를 의식한 할머니 A와 B의 말은,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앞서는 ‘인구 데드크로스’가 투영된 뼈아픈 진담이자 참담한 현실이다.

14세 이하 12.5%, 세계 평균의 절반

인구보건복지협회와 유엔인구기금(UNFPA)이 함께 발간한 ‘2020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0~14세 인구 비율은 12.5%로 세계평균 25.4%의 절반 수준. 우리나라보다 낮은 국가는 일본(12.4%)과 싱가포르(12.3%)뿐이다. 반면 우리나라 65세 이상은 15.8%로 세계평균 9.3%보다 훨씬 높다. 그마저 석성면의 경우 우리나라 평균보다 65세 이상 비율은 두 배가 넘고, 0~14세 비율은 절반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석성면이 속한 부여군은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28개 시·군·구 중 절반에 가까운 105곳이 인구소멸 위험지역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20년 5월 기준 지역별 인구소멸위험지수(65세 이상 고령 인구수 대비 20~39세 여성인구수)를 인용해 분석했다. 지수가 0.5 미만이면 인구소멸 위험지역, 0.2 미만이면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이다. 2014년 79곳, 2016년 84곳, 2018년 89곳에서 지난해 100곳을 돌파했다. 경북 군위군의 인구소멸위험지수가 0.133으로 가장 높았다. 경북 의성군(0.135), 전남 고흥군(0.136), 경남 합천군(0.148), 경북 청송군(0.155), 경남 남해군(0.156)이 뒤를 이었다. 충북 보은·괴산군과 충남 부여·서천·청양군, 전북 임실군, 전남 곡성·보성·함평·신안군, 경북 영양·영덕·청도·봉화군, 경남 의령·하동·산청군 등이 고위험 지역에 포함됐다.

지난해 1~6월까지만 해도 부여군 16개 읍·면·동 중 6곳이 신생아 ‘0’이었다. 이후 5곳에서 12월까지 출산 소식이 들렸지만, 석성면에서는 끝내 ‘0’의 행진이 이어졌다. 이렇게 지난해 출생 등록이 없었던 읍·면·동은 전체 3491곳 중 43곳이다. 한 해 전(34곳)보다 9곳이 늘었다. <표 참조>

지난 1월 19일 충남 부여군 석성면에서 가장 번화한 하나로마트 앞에서 한 노인이 마트에서 산 컵라면 박스를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석성면 어린이 숫자는 줄고 있는데, 옆의 '어린이 보호 해제' 표시판이 눈길을 끈다. 김홍준 기자

지난 1월 19일 충남 부여군 석성면에서 가장 번화한 하나로마트 앞에서 한 노인이 마트에서 산 컵라면 박스를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석성면 어린이 숫자는 줄고 있는데, 옆의 '어린이 보호 해제' 표시판이 눈길을 끈다. 김홍준 기자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 중 2020년에 인구가 증가한 지자체는 65곳(광역 5·기초 60)에 불과하다. 행안부는 “교육·의료 등 주거여건과 경제기반이 취약한 지방이 소멸 위기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도 2020년 신생아가 없다. 2017~18년에도 0명이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출생 등록은 13명뿐이다. 역시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인 이곳은 2019년 3년 만에 아기가 태어나자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1968년 북산면의 인구는 1만 명에 육박했다. 하지만 소양강댐 건설(67~73년)로 인한 이주때문에 인구가 급감했다. 현재는 귀농·귀촌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1000명이 채 안 된다. 북산면의 지난해 12월 기준 평균 연령은 61.2세. 전국 평균 연령 43.2세와 18세나 차이 난다.

2019, 2020년 출생(등록)자 0명인 지역 [자료 = 행정안전부]

2019, 2020년 출생(등록)자 0명인 지역 [자료 = 행정안전부]

저출산은 시스템 균열을 낳는다. 당장 지방 산부인과가 사라진다. 기초단체 226개 중 대도시를 빼면 시·군은 157곳. 2019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김순례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157곳 중 ‘분만 제로(0)’ 지역이 2018년 71곳(45%)에 이르렀다.

“3년 만에 아기 태어나” 뉴스 되기도

인구가 줄면 교육 기능도 흔들린다. 어린이집부터 타격을 받는다. 석성면의 밀알어린이집에서 만난 홍선영(40) 교사는 “아이들이 적어 어린이집이 석성면에 하나뿐인데, 다가오는 3월 신학기에는 기존 4개 반에서 2개 반으로 줄인다”며 안타까워했다. 석성초등학교의 강양지(51) 교무행정 교사는 “매년 3~5명의 입학생이 들어와 전교생 25명 안팎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출생률이 떨어지니 석성면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우리 학교가 언젠가 폐교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정부는 2030년 초등학교 학령인구가 당초 예상인 242만 명보다 크게 줄어든 18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전국 113곳이 폐교됐다. 경남이 22곳으로 가장 많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은 지난해 12월에야 1명이 태어나면서 가까스로 ‘신생아 제로’에서 벗어났다. 지수면은 2016년 2명, 2017년 3명, 2018년 2명, 2019년 7명이 태어났다. 0~14세 인구가 72명(전체 1481명의 5%)에 불과하다. 이곳의 지수초등학교를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효성 조홍제 전 회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30여 명이 다녔다. 결국 지수초교는 2009년에 문을 닫고 인근 송정초등학교와 통합돼 기존 이름만 그대로 쓰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인구가 줄면 일할 사람이 없어진다. 석성면의 D씨는 “일꾼 자체가 없어서 70~80대에게 맡기는데, 힘든 일을 못 하니 고구마밭 김매기나 상추 따기 정도만 한다”며 “상황이 이러니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찾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의 강북구는 지난해 25개 구 중 처음으로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들어섰다. 전체 인구 30만8055명 중 6만3313명(20.6%)이다. 읍·면·동 단위에서 특별시까지 고령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강북구의 출생등록은 지난해 1055명으로, 2019년 1270명에서 떨어졌다. 0~14세 인구 비율도 8%에 불과하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구 문제는 지역에 일자리가 있어야 사람이 들어오고 사람이 있어야 일자리가 생기는 순환적, 보완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근본적으로는 사회구성원 개개인에게 노력하면 잘 될 수 있다는 삶의 희망을 갖도록 하는 사회문화적 변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시 지난 19일 한낮, 석성면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다는 하나로마트 앞.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남녀 둘이 근처 정류장에서 먼 길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초중고생으로 보이는 행인은 4시간 동안 한 명도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A할머니의 전동카트가 골목 어귀에 세워져 있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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