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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낙하산 탓"이라던 민변···낙하산 타고 공공기관 진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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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세월호 참사 5개월 뒤인 2014년 9월 ‘416 세월호 민변의 기록’이란 책을 냈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인적 쇄신 없는 조직 개편과 충성도 기준의 낙하산 인사로 인해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은 무력화될 뿐이었다”고 쓰여 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꼽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법무법인 정세의 김택수 변호사는 민변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2014년 10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한국전쟁이 우리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만큼이나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다. 도대체 국가가 뭔지, 이 사회가 어떤 의미인지”라고 말했다.

그랬던 김 변호사가 지난 5일 한국도로공사 상임감사위원에 취임했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올 한해는 코로나 위기를 넘어 도공이 국민과 더불어, 지역사회와 더불어 사랑과 신뢰의 ‘1등 공기업’으로 거듭나는 희망을 키워가겠다”고 밝혔다. 연봉은 지난해 기준 9927만원이다.

안전 핵심인 도로공사, 인천공항공사에 민변 출신 임명 

이처럼 민변 출신의 공공기관 진출은 문재인 정부에서 두드러졌다. 야권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됐지만 최근에도 이러한 흐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전환 과정에서 갈등이 컸던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해 11월 19일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이주여성법률지원단장을 지낸 박수진 변호사를 비상임이사에 임명했다. 비상임이사는 따로 출근하지 않고 이사회가 열릴 때만 회사에 나가는데,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비상임이사에게 지난해 3000만원을 지급했다.

법무와 관련된 공공기관에는 이미 민변 출신이 상당히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실에 따르면 법무부 산하의 정부법무공단, 대한법률구조공단,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등이 그렇다.

민변 사무총장·회장 출신의 장주영 변호사는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장 변호사는 민변 회장이던 2014년 2월 ‘박근혜 정권 1년 실정 보고 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선 ‘박근혜 정권에 대한 민변 10대 요구 사항’도 발표됐다. 그 중 7번째 요구는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를 즉각 중단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하며, 국민의 기본권과 공공성을 훼손하는 공공기관 민영화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였다.

민변, 박근혜 정부에 “낙하산 즉각 중단” 요구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이상호 사무총장과 김제완·최은순 비상임이사도 민변 출신이다. 이 사무총장과 최 이사는 민변 부회장을 지냈다. 2019년 12월 사임한 조상희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은 최초의 민변 출신 공단 이사장이었다.

현 정부에서 민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권력을 견제해야할 민변이 스스로 권력화 됐다”는 비판이다. 민변 출신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민변 출신이 권력 핵심층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 서울시장 후보군으로까지 거론됐던 박주민 의원 등 중량감 있는 여권 인사들 중 민변 출신이 많다. 또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적극 옹호하고 있는 민주당의 김용민 의원과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도 민변에서 활동했다.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두 사람은 민변 출신이다. [중앙포토]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두 사람은 민변 출신이다. [중앙포토]

특히, 새로 출범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사에 현 정권과 코드가 맞는 민변 출신 변호사가 상당수 중용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 19일 열린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문제가 쟁점이 되자 김 후보자는 “국민의힘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해 ‘민변 공수처’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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