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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옳다는 합리성이 가짜 뉴스 온상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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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호 20면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
제랄드 브로네르 지음
김수진 옮김
책세상

인터넷으로 정보 유통 급팽창 #물량공세 담론 전쟁 가능해져 #체계성 없는 비판의식도 문제 #능력 있는 주체 전투에 나서야

우리는 인터넷과 모바일 SNS를 타고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 한가운데 와 있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하기도 쉽지 않다. ‘가짜면 어때, 나만 좋으면 되지’라는 생각조차 만연하고 있다. 일종의 ‘확증편향 바이러스’는 사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독성이 더 강하다. 사회공동체 자체를 불신과 파멸로 이끌 무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는 프랑스 디드로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제랄드 브로네르가 프랑스 사회를 중심으로 이러한 폐해를 깊이 있게 파헤친 책이다. 프랑스어판이 2013년에 처음 출간됐기 때문에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약간 지나간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그 흐름은 속도의 차이일 뿐이지 양상은 비슷하다.

이 책에는 그동안 음모론적으로 제기된 많은 현상을 다루고 있다.

알카에다가 모의한 대량살상 사건인 9·11테러의 배후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이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한 여론조사에선 미국인 36%가 연방 관리들이 테러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거나 매우 그럴 것 같다고 대답했다. 독일에서도 26%가 그렇게 생각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CIA 등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음모론 지지도 미국에서 무려 75%에 달했다.

2001년 미국의 9·11 테러는 음모론의 먹잇감이다.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보는 비율이 36%에 이른다는 여론조사 도 있다. [AFP=연합뉴스]

2001년 미국의 9·11 테러는 음모론의 먹잇감이다.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보는 비율이 36%에 이른다는 여론조사 도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에서는 2010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부부의 불륜 스캔들이 주류 대형 미디어를 탔다. 카를라 부르니 여사가 사르코지 대통령과 결별하고 가수인 벵자맹 비올레에게 가면, 사르코지는 가라테 챔피언 출신 환경부 장관 샹탈 주아노의 품 안에서 위안을 얻을 것이라는 뉴스였다. 이 루머는 처음엔 개인 트위터 등 SNS에서 주로 거론되다 ‘주르날 뒤 디망슈’ 인터넷판 블로그를 거쳐 마침내 거의 모든 프랑스 일간지와 라디오, TV 그리고 더선, 데일리메일 같은 유력 언론들이 보도했다. 완전히 가짜 뉴스로 밝혀진 해프닝이었다.

물론 이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대에 와선 허구한 날 가짜 뉴스 공방이 벌어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광우병 괴담, 천안함 피격 조작설, 세월호 침몰을 둘러싼 온갖 루머 등 근거가 희박한 유언비어가 확대재생산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진행형이며 갈수록 그 폐해는 더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다.

인지 시장의 공급 혁명을 부른 것은 인터넷이었다. ‘민주주의를 민주화’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그러나 상황은 엉뚱하게 전개되고 있다. 기대와는 달리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는 온갖 정보들이 디지털 바다를 채워 누구나 순식간에 검색이 가능한 환경이 마련됐다. 우리 동시대의 민주주의에 ‘무지에 근거한 논증’이 공적 공간에서 전파되기에 유리한 조건들이 조성된 것이다. 의심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막대한 양의 논거를 쏟아부어 자신의 담론과 경쟁하는 모든 담론을 묻어 버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과학과 지식이 끊임없이 진보하는 데도 잘못된 신념들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집단적 맹신도 존재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합리성의 어두운 면이 홀연히 표출되는 결과를 낳았는데 필자는 이런 현상을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이를 ‘지식의 민주주의’로 어떻게 옮겨 가느냐가 이 책의 쟁점이다.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가 도저히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전면적인 과정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국민의 전반적인 학업 수준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고등 교육을 받은 층에서도 의외로 잘못된 신념을 가진 경우가 많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가 체계성 없이 발휘되면 쉽사리 맹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식의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핵심적 쟁점은 합리성의 인지적 한계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과학적 커뮤니케이션 공학은 우리의 합리성이 지닌 어두운 측면을 고려해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또 기만적인 추론이 우리의 사고방식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가공할 확증편향도 눈에 띄게 억제될 수 있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정통성 있는 지식을 중계해 줄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가 ‘지식의 민주주의’로 가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저자는 “이제 모든 능력 있는 주체가 인지 시장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전투에 뛰어들 때”라고 말한다. 그래야 ‘지식의 민주주의’와 체계적 사고가 흥하고 곳곳에서 환상 속 학자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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