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백신 내성' 가능성을 두고 긴급 실험에 나섰다. 남아공보다 앞서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한 영국에서 남아공발(發) 변이에는 기존 백신이 듣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남아공 정부 "긴급 백신 테스트 진행"
남아공 감염병 전문가 리처드 레셀스 박사는 4일(현지시간) AP통신에 “(바이러스의) 변이를 테스트하기 위해 연구소에서 긴급히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질문”이라고 밝혔다. 남아공 정부는 변이 바이러스를 코로나19 항체 보유자나 백신 접종자의 혈액에 대해 검사하는 실험을 통해 기존 백신의 효과를 판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긴급 실험은 매트 핸콕 영국 보건장관의 4일(현지시간) BBC와 인터뷰에서 비롯됐다. 핸콕 장관은 “남아공에서 시작된 변이 바이러스는 영국의 새로운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큰 문제”라며 “굉장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핸콕 장관은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지만, 전날 영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선 백신 내성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영국 정부 백신 태스크포스(TF)팀 소속 존 벨 박사는 “현재 개발된 백신들은 영국발 변이에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남아공 변이는 모르겠다. 큰 의문이 있다”고 밝혔다. 바이러스에 항체가 달라붙도록 하는 부분에 변이가 나타나 백신이 효과를 발휘할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변이 바이러스는 기존 바이러스보다 감염력이 높아 백신에 내성이 나타날 경우 급속히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B.1.1.7)와 남아공발 변이 바이러스(501.V2)는 모두 기존 바이러스에 비해 1.5~1.7배 이상 감염력이 높다. 지난해 9월 처음 출현한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는 이미 전 세계 33개국으로 번져나갔고, 최근 런던과 그 인근 확진자의 60%가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부터 코로나 2차 파동을 겪고 있는 남아공에선 누적 확진자가 110만명을 넘어서며 지난해 7월 말 1차 파동 때보다 더 빠르게 사망자와 확진자가 늘고 있다.
국내 첫 유입 확인…방역 실패 시 급속 확산 가능성도
문제는 이런 변이 바이러스가 간신히 700명대로 감소한 국내 방역 상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일 중앙방역대책본부는 “현재까지 국내에서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 9건과 남아공발 변이 바이러스 1건 등 변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총 10건 확인됐다”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를 경유해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남아공발 변이 바이러스 확진자의 지역 사회 접촉은 없었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지만, 남아공발 변이 바이러스의 첫 국내 유입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다만, 백신 전문가들은 기존 백신이 변이 바이러스에 적용되지 않더라도 12개월 이내에 새 백신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벨 박사는 “변이가 백신 효능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아니며 잔류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백신이) 설령 효과가 없더라도 재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바이오엔테크의 우구르 사힌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제약업체 화이자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 “변이에도 예방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백신이 변이에 효과가 없더라도 6주 안에 이에 맞는 백신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