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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각 심장재단 이사장 "심장병 어린이 도와주세요"

중앙일보

입력

'갑자생(甲子生) 의사'. 한국 혈관외과학계의 태두(泰斗)로 불리는 이용각(李容珏.79.한국심장재단 이사장)박사가 1997년 낸 수필집의 제목이다.

갑자(甲子)년인 24년에 태어난 그는 이 책에서 굴곡 많았던 한국의 근세사와 그 속에서의 자신과 가족의 삶, 한국 의학 발전 과정 등을 회고록 형식으로 담았다.

99년부터 5년째 한국심장재단(www.heart.or.kr)을 이끌고 있는 李박사를 지난 18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한국심장재단 이사장실에서 만났다. 국내 최초로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했던 그가 심장재단에 몸을 담게 된 것은 그의 전공이 모든 장기이식 수술의 근본인 혈관외과이기 때문이다.

그는 창립한 지 19년이 되는 한국심장재단이 그동안 1만6천여명의 심장병 환자를 포함, 기형.신장이식.골수이식 환자 등 모두 1만8천여명에게 새로운 건강과 생명을 찾아주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없이 재단이 환자들에게 지원한 4백억원에 가까운 금액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매월 1천원씩 보내주는 7백여명의 일반회원, 매월 5천원씩 지로로 송금하는 4천여명의 찬조회원, 그리고 일시금으로 수백~수천만원을 기탁하는 일반회원들의 도움 덕분에 가능했다고 그는 말했다.

"80년대에 재단 지원으로 수술을 받은 어린이들이 성장해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나누겠다고 후원금을 들고옵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인데도 말입니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분명합니다."

李박사는 재단 지원으로 수술받은 환자들 중 약 40%가 '보은의 후원금'을 보내오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매달 2천여만원의 후원금을 내는 ㈜오뚜기와 함태호 회장께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어느날 탤런트 이정섭씨가 서울 대학로에 있는 연극무대로 오라는 거예요. 후원금을 준다기에 갔죠. 연극을 끝낸 李씨는 관객들에게 '심장병 어린이를 돕자'고 일장 연설을 한 뒤 주머니를 돌렸어요. 그 자리에서 4백만원이 걷혔어요. 세명의 어린이를 수술할 수 있는 돈이죠. 세상은 참 따뜻합디다."

그는 선천성 심장병으로 고생하던 아이의 부모들이 치료 후 '이제 혜진이가 달리기도 할 수 있어요'라며 보낸 감사 편지를 받을 때 가장 기쁘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립니다. 그러나 李여사가 심장재단을 창립한 공로만큼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는 84년 심장재단이 세워진 덕분에 정부의 직접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던 불우한 심장병 환자들이 새 삶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심장재단은 최근 외국의 환자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펴왔다. 중국 동포 환자는 물론 우즈베키스탄.필리핀.베트남 심장병 환자 등 1백4명에게 심장수술을 해줬다. 그는 "북한 어린이들에게도 치료비를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李박사는 가톨릭의대 교수로 있던 69년 3월 25일 강남성모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신장이식에 성공한 의사로 유명하다.

그는 이 수술로 한국 의학발전에 큰 획을 그었으며, 한국 의료계는 국제적인 수준의 장기이식 기술을 확보하게 됐다.

"당시 30세였던 환자는 '죽어도 좋다'며 수술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실패하면 보따리 싸서 한국을 떠나겠다는 각오를 했지요." 그는 "첫 신장이식 수술 성공은 동참한 의료진의 협력과 운이 따른 덕분"이라고 말했다.

의사였던 부친(故 이형래옹)의 영향으로 의사의 길로 들어선 李박사의 막내 동생은 이용경(60) KT 사장이다.

그는 "금리가 낮아져 기금 이자로 수술비를 지원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면서 "작은 나눔이 모여 큰 일을 할 수 있는 후원자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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