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론 이틀만에 막히자...이낙연 "오랜 충정에서 말한 것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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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부터), 김태년 원내대표, 노웅래, 신동근, 양향자 최고위원이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 간담회를 위해 이 대표의 사무실로 각각 들어가고 있다. 휴일에 당 대표 회의실이 아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지도부 회의가 열린 건 극히 이례적이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부터), 김태년 원내대표, 노웅래, 신동근, 양향자 최고위원이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 간담회를 위해 이 대표의 사무실로 각각 들어가고 있다. 휴일에 당 대표 회의실이 아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지도부 회의가 열린 건 극히 이례적이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꺼낸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赦免) 구상이 당원과 지지층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 대표가 새해 첫날 언론 인터뷰에서 ‘사면론’을 꺼낸 지 이틀 만이다.

이 대표는 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긴급 최고위원 간담회를 소집해 의견 수렴에 나섰다. 당 최고위원회는 회의 직후 입장문(최인호 수석대변인 대독)을 통해 “이 대표의 발언은 국민통합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한다”면서도 “이 문제는 국민의 공감대와 당사자들의 반성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앞으로 국민과 당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고위원회는 촛불 정신을 받들어 개혁과 통합을 함께 추진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 공감대와 당사자 반성이 거론된 데 대해 최 수석대변인은 “지금부터 당원과 국민의 뜻을 경청해서 판단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면을 공식 건의할지를 지금부터 재론하겠다는 취지였다. 사실상 이 대표의 제안이 원점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야권에선 ‘당사자들의 반성’이란 표현이 들어간 것을 두고 “여당 대표가 국민을 우롱했다”는 비난이 나왔다.

“광장 정치의 현실” 언급한 이낙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 간담회를 마친 후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들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건의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저의 충정"이라고 표현했다. 뉴스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 간담회를 마친 후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들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건의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저의 충정"이라고 표현했다. 뉴스1

이 대표는 이날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사면 제안에 대해 두 차례나 “저의 충정(忠情)”이라고 표현했다. 이 대표는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라는 국난을 극복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면서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해결해가는 데에 국민의 모인 힘이 필요하다”며 “국민 통합을 이뤄나가야 한다는 제 오랜 충정을 말씀을 드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정치 또한 반목과 대결의 진영 정치를 뛰어넘어 국민 통합을 이루는 정치로 발전해가야 한다고 믿는다”며 “그러한 저의 충정을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이 대표는 비공개회의에서도 이런 진정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복수에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대표는 “국무총리로 지내며 광화문을 보며 광장 정치의 현실을 봤다. 그런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느낌과 사명감을 느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통합이 국가의 혁신을 위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필요 때문에 말한 것뿐, 다른 고려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표의 취지에 모든 참석자가 공감한 건 아니었다. 복수의 참석자들이 당원과 지지층의 반발을 전했다. “우리가 통합을 위해 얘기하더라도 내부 논란이 계속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입장문에 ‘촛불 정신’이 명시된 것 역시 전직 대통령 사면에 부정적인 당내 기류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의원은 “국민통합을 위해서 얘기한 거로만 하면 (당의) 노선을 통합으로 바꿨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촛불 정신을 받들어 개혁한다’는 걸 넣었다”고 설명했다.

재논의한다지만 지지층 반발이 난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치 또한 반목과 대결의 진영정치를 뛰어 넘어 국민통합을 이루는 쪽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치 또한 반목과 대결의 진영정치를 뛰어 넘어 국민통합을 이루는 쪽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일단 이 대표 측은 공론화 작업을 시작한 것에 의미를 두는 모양새다. 이 대표 측 핵심당직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논의는 일단 여기까지 하고 지켜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수의 이 대표 측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상고심 선고일인 14일 이후 본격적인 논의가 재개될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 대표의 또 다른 측근은 “이 대표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권리당원과 지지층의 반발이 여전히 변수다. 다수의 권리당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입장문이 나온 뒤에도 당 홈페이지를 통해 “그럴 거면 국민의힘으로 가서 정치하라”, “오로지 본인의 당선만을 위해 정의에 어긋나는 해당 행위를 했다” 등 이 대표를 향해 거친 비난을 쏟아냈다. “지지자들도 통합 못 시키고 오히려 분열하게 만들었다”며 대표직 사퇴를 요구하는 글도 여럿 있었다.

의원들의 반발도 계속됐다. 판사 출신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에 “사면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태극기 부대와 이로 인해 정치적 복권을 노리는 특정 정치인뿐”이라며 “이 대표의 고뇌를 이해하지만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이미 안민석·박주민·강득구·김남국 등 다수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출한 상태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역 당원과 지지자들의 반발이 너무 세다”며 “이 대표가 자칫 잘못하면 이번 일로 호남에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대표가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가장 큰 리더십 위기를 맞은 형국이다.

오현석·김효성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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