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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교감 없었나? 이낙연 사면론 꺼내자, 靑관계자 "좋은 말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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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을 지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문제가 새해 벽두 정국을 강타했다. 이 대표는 1일 언론 인터뷰에서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며 "국민 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비록 '건의'라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대통령의 고유 영역에 속하는 사면 문제를 여당 대표가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 내 '친 문재인'계 일부 의원들과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에서 노골적인 반대 목소리를 나오는 상황에서 자칫 이 대표의 발언이 당·청간, 또는 당내 갈등으로 치달을 경우 이 대표 본인이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이 작지 않다.

그래서 사면의 키를 쥐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반응이 주목됐지만 이날 청와대는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일단은 주말 동안 여론을 지켜보겠다는 태도로 읽힌다.

공식반응은 없었지만 중앙일보가 접촉한 내부 핵심 인사들 사이에선 일단 “검토할 수 있다”는 부정적이지 않은 반응이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실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건의될 경우 청와대에서도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나가기 위해선 하나하나 막혀있는 이런 문제들도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면이 이뤄지기 위해선)국민적인 동의와 공감을 얻어야 할 것"이라며 "여당 대표로서 '건의'라고 하셨는데, 좋은 말씀을 하셨다"고도 말했다.

 정치권에선 "신중한 성격의 이 대표가 이처럼 민감한 메가톤급 이슈를 문 대통령과의 조율없이 불쑥 꺼냈겠느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문 대통령과 이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가 형성한 뒤에 이 대표가 말을 꺼냈을 가능성이다.

더군다나 이 대표는 지난달에만 문 대통령과 최소 두 차례(12월 12일,26일) 독대한 사실이 이미 확인됐다. 정치권에선 두 사람의 대화 테이블에 '사면 이슈'가 메뉴로 올라왔을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발언은 이 대표가 여당 대표로서 개인의 의견을 말한 것으로 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내부적으로 전직 대통령 사면과 관련된 검토가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 밝은 청와대 관계자는 "사면을 위해선 국민적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특히 문 대통령의 열렬 지지층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는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에 관련 논의를 어떻게 공론화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시말해 어떤 형식으로 사면 이슈를 제기해야 역풍을 최소화할지에 대한 전략적 숙고가 진행중이라는 뜻이다.

야당 진영의 전략가로 통하는 정치권 인사는 "청와대가 직접 하기엔 부담스러운 사면 문제를 이 대표가 '건의'의 형식을 빌어 떠맡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문 대통령과 이 대표가 정치적 부담을 나누는 그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이 확정됐다.   대법원 2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의 상고심에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7억8천여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9년 4월 12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는 이 전 대통령. 연합뉴스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이 확정됐다. 대법원 2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의 상고심에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7억8천여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9년 4월 12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는 이 전 대통령. 연합뉴스

청와대는 지금까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관련 요청이 있을 때마다 “법원의 최종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29일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형이 확정됐다. 박 전 대통령 역시 14일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사면 검토의 대상이 된다.

 문 대통령이 새해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신임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신현수 민정수석을 임명한 데 주목하는 이도 있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오랜 측근인 신임 민정수석을 통해 사면 문제 검토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는 “지난해 ‘조국 사태’와 ‘추ㆍ윤 갈등’ 등을 거치면서 이제 '통합'으로 가야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만약 전직 대통령을 사면할 뜻이 있다면 청와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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