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보면 시대를 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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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당뇨와 지는 위궤양', '창궐하는 에이즈와 박멸된 천연두'

질병도 흥망성쇠의 역사가 있다. 시대에 따라 발병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질환이 뜨고 어떤 질환이 질까. 질병의 부침을 가늠하는 세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질병의 역사를 살펴본다.

◇백신과 치료제가 판가름

말라리아와 이질.에이즈.장출혈성 대장균.사스…. 최근 유행하는 전염병이다. 반면 천연두와 소아마비는 자취를 감췄다. 결정적 차이는 예방백신이 있는지 여부다. 효과적인 백신이 있는 전염병은 소멸하고, 없는 전염병은 창궐한다.

치료제도 중요하다. 위궤양과 무좀이 대표적인 사례다. 속쓰림 증세를 보이는 위궤양과 가려움증을 보이는 무좀은 잘 낫지 않는 고질병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환자 숫자가 격감했다.

위궤양의 경우 과거 이미 분비된 위산을 중화시키는 대증치료제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로섹.파모티딘.라니티딘 등 위산분비 자체를 억제하는 근본 치료제가 등장했기 때문에 수십년 동안 재발을 반복해온 난치성 위궤양도 이들 치료제를 한 두 달 복용하면 쉽게 낫는다.

무좀 역시 디플루칸.스포라녹스.라미실 등 효과적인 곰팡이 치료제가 등장해서 '무좀=재발'은 옛말이 되고 있다. 치료가 어려웠던 손톱과 발톱 무좀도 처방대로 바르거나 먹으면 두 세달 이내 대부분 씻은 듯 낫는다.

심장질환도 마찬가지다. 과거 가장 흔했던 심장병인 판막질환은 거의 사라졌다. 판막질환은 어릴 때 성홍열 등 세균감염의 후유증으로 심장판막이 손상받아 생기는 질환.

그러나 항생제 개발로 세균감염을 손쉽게 치료할 수 있게 되자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 등 관상동맥질환에 심장병 1위 자리를 내놓아야했다.

◇엇갈리는 노인질환과 어린이질환

노인인구의 급증과 양육 환경 개선으로 노인질환은 늘고 어린이질환은 줄고 있다.

치과의 경우 충치는 실란트(어금니의 균열부위를 메워주는 물질)의 확산, 불소 치약 보급 등으로 줄고 있는 반면 잇몸질환은 고령인구의 증가로 늘고 있다.

환자의 연령과 관련해선 안과와 이비인후과에서 극명하게 희비가 엇갈린다. 안과는 당뇨망막증과 백내장, 황반변성증 등 미래형 노인질환이 많은 반면 이비인후과는 축농증과 중이염 등 과거형 소아질환이 많기 때문.

관절염과 당뇨.심장병.뇌졸중.암 등 오늘날 가장 흔한 만성질환은 대부분 노인에게 흔한 질환이다.

반면 언청이나 사시 등 소아에게 흔한 기형질환은 수술기법의 발달로, 홍역이나 수두 등 전염질환은 백신의 발달로 과거보다 급격히 줄고 있다.

◇영양 과잉시대의 산물

비타민A는 야맹증, 비타민B는 각기병, 비타민C는 괴혈병, 비타민D는 구루병….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우는 비타민 결핍증이다.

일제시대만 해도 가장 흔한 질환 중 하나였지만 이젠 단 한 명만 발견해도 학회에 보고할 정도로 희귀질환이 됐다.

그러나 영양 과잉으로 생긴 질환은 급속히 늘고 있다. 비만과 당뇨.고지혈증.심장병 등 오늘날 성인병으로 지칭되는 질환은 모두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 병이다.

당뇨를 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1983년만 해도 10대 사망원인에 끼지 못했던 당뇨가 2001년 4위까지 급부상했다. 현재 5백만여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10년 후엔 두 배 가까이 늘어 1천만명에 육박해 당뇨대란이란 섬뜩한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암도 마찬가지다. 유방암과 대장암.전립선암 등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암도 먹는 것에 비해 운동량이 적은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뜨는 질환은 대부분 생활습관병이다. 과거 성인병이란 용어를 썼지만 최근 성인병의 발병 연령이 청소년과 청장년층까지 확산하므로 내과학회 등 학계에선 생활습관병으로 용어를 바꿔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생활습관병의 특징은 일조일석에 발생하지 않는 반면 첨단 치료제나 백신도 무용지물이란 것이다. 생활습관병은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이다.

전문가들은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잡힌 식사, 적절한 휴식과 청결한 위생'이란 네가지 원칙만 매일 꾸준히 실천해도 대부분 생활습관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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