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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윤석열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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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윤석열님이 텔레그램에 가입했습니다!’ 지난 4일 오전에 날아든 메시지다. 텔레그램은 스마트폰에 저장된 전화번호의 주인이 그곳에 가입하면 내게 이런 식으로 알려준다. 순간 ‘대한민국 검찰총장도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대화의 보안을 걱정하는 세상이구나’라는 서글픈 단상이 스쳤다. 텔레그램 새 식구에게 ‘망명을 환영합니다’라고 써보내곤 했는데, 윤 총장에겐 하지 않았다. 그에게 전화를 걸지도, 메시지를 전송하지도 않은 지가 꽤 됐다. 권력이 짜 놓은 ‘검·언 유착’ 프레임은 이렇게 단절·고립의 효과를 낸다.

부당함에 지지 않으려고 버틴다 #내가 물러나면 후배들 더 당한다 #정치할 건가? 솔직히 나도 모른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는 했다. 지금 한국인들이 가장 속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 그의 마음을 보는 것은 한편으론 직업적 책무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절친’ 세 명에게 물었다. 변호사 둘, 법학자 하나. 셋 다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다. 윤 총장과 40년 넘게 만나는 사이다. 그들을 통해 듣는 윤석열의 생각이 어쩌면 내가 직접 묻고 들어 아는 것보다 그의 진심에 가까울 수 있다.

① 도대체 왜 버티나?=그를 마주하면 맨 먼저 던질 질문이었다. 친구 A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물은 적 있다. 석렬이도(친구들은  ‘윤서결’로 부르지 않는다) ‘나라고 왜 편히 살고 싶지 않겠냐’고 한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 지휘권 발동과 감찰 착수만으로 검찰총장이 스스로 물러난 전례를 자신을 쫓아내는 데 악용하려 들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위법에, 부당함에 지지 않겠다는 것, 그게 바탕이다.” 친구 B는 “잘못한 것 없는 사람을 쫓아내는 것은 옳지 않으니까, 자기가 버텨야 하는 게 맞으니까. 심플하다”고 말했다.

② 좌천된 후배에 대한 마음은?=‘아끼는 후배들이 계속 변방으로, 한직으로 쫓겨나는데 차라리 내가 물러나서 그들이 더 피해를 보지 않게 해야 하나?’ 윤 총장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까. 품어 온 의문이다. 친구 C가 말했다. “그 부분을 힘들어 하긴 한다. 그런데 ‘내가 나간 뒤에 더 망가진 검찰에서 한 자리씩 하는 게 좋은 검사가 되는 길은 아니지 않아?’라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내가 좀 독하지? 나더러 악어상이라고 하는 이도 있잖아?’라고 한 적도 있다.” 한 역술인이 2년 전 그의 외모를 악어에 비유해 글을 썼다. 친구 A는 “물러나면 조국 수사한 검사 등이 더 핍박받지 않겠느냐고 한다. 비록 ‘식물 총장’이지만 자기가 있어서 인사를 더 함부로 하지는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③ 정치할 것인가?=친구 A와 B는 윤 총장과 정계 진출 문제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A는 최근 윤 총장이 가장 자주 만난 사람이다. 정치를 하나 마나를 놓고 주고받은 말이 없다는 것은 만약 윤 총장이 어느 쪽으로든 결심했다면 본인과 부인 말고는 알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C는 정치할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총장 임기 마칠 때까지는 그것에 대한 생각 자체를 안 하려고 한다. 만일 내가 정치를 해도 특정 정당에 가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C가 전한 윤 총장의 대답이다.

④ 제일 답답해 하는 것은?=A와 C는 윤 총장이 ‘개혁 저항’이라는 프레임에 가장 억울해 한다고 말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나 검경 수사권 재조정에 반대 의사를 표시한 적도 없고, 검찰권 남용을 막는 제도적 개혁에 앞장섰는데도 개혁 반대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지은 죄를 감추고 싶은 사람들의 협잡’으로 인식한다고 했다. 두 친구는 윤 총장이 부쩍 ‘국민의 검찰’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고 했다.

뒤가 구리고 민심을 잃은 이장(里長)이 “범 내려온다”며 마을 사람 겁주며 산을 헤집고 엽총에 산탄총까지 쏴대는 것과 다를 게 없는 황당한 풍경이 2020년 내내 펼쳐졌다. 과연 범은 내려올 것인가. 잡지도 못할 범의 하산이 두렵다면 영역을 인정하고 그만 괴롭히는 게 현명한 처사 아닌가.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