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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당첨’  모르고 아파트 샀는데…부산서 41가구 쫓겨날 위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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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부산 해운대 우동에서 개장한 한 아파트 모델 하우스에 시민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최근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 41가구가 불법 청약으로 당첨된 분양권을 매수해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송봉근 기자

부산 해운대 우동에서 개장한 한 아파트 모델 하우스에 시민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최근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 41가구가 불법 청약으로 당첨된 분양권을 매수해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송봉근 기자

불법 당첨 사실을 모르고 분양권을 매수한 부산 해운대구 A아파트 41가구 주민이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28일 중앙일보 취재 결과에 따르면 A아파트 시행사는 주택법 65조의 ‘불법 청약 분양권은 공급 계약 취소되며, 그로 인한 전매 계약도 무효’라는 부분을 근거로 분양 취소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웃돈 주고 분양권 산 뒤 입주 #뒤늦게 매도자 불법청약 밝혀져 #시행사 ‘전매 무효’ 분양 취소 돌입 #시민단체 “선의 피해막는 제도 필요”

41가구 계약이 취소되면 시행사는 분양가가 아닌 현 시가대로 재분양할 수 있다. 2016년 5월 분양 당시 105㎡(32평형) 기준 5억원 수준이었던 A아파트 시세는 현재 11억원이 넘는다.

이 사건은 부산지방경찰청이 지난 15일 불법으로 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54명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불거졌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부정 당첨자로 의심되는 이들이 있다는 국토교통부의 수사 의뢰를 받고 1년 가까이 수사를 해왔다.

경찰 수사결과 이들은 4명의 아이를 둔 이혼녀와 위장 결혼하거나, 위조된 임신 진단서나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이용해 부양가족 수를 늘리는 수법으로 아파트를 청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54명 중 41명이 당첨됐다. 41명 모두 1억~1억5000만원의 프리미엄을 받고 분양권을 되판 혐의를 받고 있다. 2016년 분양 당시 해운대구는 관광특구 지역이어서 전매 제한이 없었다.

불법 청약인 줄 모르고 분양권을 산 이들은 “선의의 피해자”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불법 청약 41가구 중 38가구는 해당 지자체인 해운대구청에 불법 청약과 무관하다는 소명 자료를 제출한 상태다. 2016년 6월 A아파트 분양권을 산 다음 2019년 11월 입주한 B씨(37)는 “해운대구청에 소명 자료를 제출했는데도 시행사는 일괄 공급 취소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며 “불법을 저질러 거주하는 사람과 불법에 가담하지 않고 모르고 산 저 같은 가구를 똑같이 공급 취소하는 게 공정한가”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B씨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신혼부부가 유산을 당한 사연도 전했다. B씨는 “분양 취소 절차 가처분 통보를 받은 한 신혼부부는 스트레스로 잠을 못 자고 식사도 못 하는 지경에 이르다 결국 최근 배 속의 아기를 잃게 되는 일을 겪게 됐다”고 전했다.

해운대구는 중재에 나설 법적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해운대구 건축과 관계자는 “피해를 호소하는 입주민에게 받은 소명 자료를 국토부에 전달했다”며 “소명 자료 수용 여부는 국토부와 시행사가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시행사는 28일 공식 입장 자료를 내고 “경찰 수사로 확인된 공급 계약 취소 가구는 258가구 중 41가구(15.9%)”라며 “계약 취소는 시행사 의사와 무관하며 국토부에서 통보 받은 내용을 절차대로 진행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에 국토부 관계자는 “주택법 65조에 따라 불법 청약 분양권 취소 권한은 있지만, 선의의 피해자에 대해 분양권을 유지하라고 시행사에 명령할 권한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택법 65조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도한영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정부가 2018년 ‘매수자가 분양권의 부정 당첨을 확인할 수 있는 공시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2년째 감감무소식이다”며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정부가 제도 보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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