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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지각 심사…정의만 갖고 반나절 갑론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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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심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 여야는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를 열어 중대재해법을 상정·심의했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정부가 전날(28일) 제출한 법안 수정안이 정부·여당의 단일안인지를 두고 여야가 옥신각신하면서다.

법사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1소위원장)은 이날 “정부안이 일종의 단일안 성격을 갖고 있다”고 했다가, 오전 회의 직후엔 “정부안이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을 바꿨다. 회의에 참석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아직 각 부처의 의견을 취합하는 중이라 단일안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보고했기 때문이다.

국회 법제사법위 민주당 간사(1소위원장)인 백혜련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1소위 회의장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씨와 대화하고 있다. 이들은 단식 19일째다. 뉴스1

국회 법제사법위 민주당 간사(1소위원장)인 백혜련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1소위 회의장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씨와 대화하고 있다. 이들은 단식 19일째다. 뉴스1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정부가 단일안을 만들어 와야 법안 심사의 신속성·효율성을 기할 수 있다”고 다그쳤고,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한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너무 한심하다. 오전 내내 중대재해의 정의만 놓고 얘기했다. 이렇게 하면 며칠이 걸릴지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회의장 밖에선 이해당사자 간 충돌도 있었다. 단식 19일째인 고(故)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故)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등 산업재해 사망자 유족 측과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상근부회장 등 재계 측은 이날 오후 소위에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해 각자의 입장을 전달했다. 이후 먼저 진술을 마치고 나온 김 이사장이 나중에 나온 김 부회장을 좇아 붙잡으면서 설전이 벌어졌다. 김 이사장은 “그렇게 처벌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잖느냐”고 말하는 김 부회장에게 “용균이의 피를 갈아 넣고 당신네 재력을 쌓지 않았느냐”고 쏘아붙였다.

이 같은 혼선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중대재해법이 발의된 건 지난 6월인데 여야가 머리를 맞댄 건 이날이 처음이어서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의사일정 협의에 응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에서 단일안을 만들어 와야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해관계가 얽혀 논쟁거리가 많은 제정법인데도 그렇게 심의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다가 법사위의 요구가 있자 부랴부랴 수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그간 지적이 많았던 인과관계 추정과 법인의 범죄능력 인정 등 위헌 요소는 뺐지만 ▶법 적용 대상 ▶처벌 수위 ▶법 적용 유예 여부를 두곤 논란이 여전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원안과 정부 수정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원안과 정부 수정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①대상=정부는 법 적용 대상인 ‘경영책임자’ 범주에서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장을 제외했다. 공무원 처벌도 인허가권·감독권을 가진 자 중 직무유기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한정했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겠다며 ‘법인 이사’를 ‘안전·보건 담당 이사’로, ‘실질 관여자’를 ‘대표·총괄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바꿨다. 경영책임자의 위험 방지 의무는 국민의힘(임이자 의원)안과 유사하게 ‘중대재해 예방 조직·인력·운영·예산편성 정기점검’ 등으로 구체화하고,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복되는 규정도 들어냈다. 정의당은 “경영책임자의 직접적인 의무를 배제해 책임에서 비켜날 수 있도록 하고, 위험의 외주화 조항을 삭제해 버렸다”(강 원내대표)고 반발했다. 그러나 재계는 “여전히 의무 규정이 모호하다”(김용근 부회장)는 입장을 보였다.

②수위=정부는 법정형이 ‘3년 이상 징역’(정의당) ‘2년 이상 징역’(민주당) 등으로 상한이 없는 건 과도하단 의견도 냈다. 벌금형도 상한(20억원)을 설정하고, 가중처벌의 근거도 삭제했다. “중대재해의 개념이 애당초 ‘○명 이상’으로 돼 있어 경합범 가중의 전제인 여러 죄의 성립 자체가 안 된다”는 이유였다. 법 위반에 따른 작업중지·영업정지·허가취소 등 행정처분은 의무규정에서 재량규정으로 수정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역시 손해액의 ‘5배 이상’을 ‘5배 이하’로 완화했다. 정의당은 “벌금형 가중 등 처벌이 강화돼야 기업 스스로 산재 예방에 나선다”(강 원내대표)고 반대했고, 정부는 중대재해의 개념을 지금처럼 ‘사망자 1명 이상’으로 유지할 경우 처벌 수위는 더 낮춰야 한다고 했다.

③유예=정의당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 4년 유예 규정을 “죽음도 유예가 되느냐”(정의당 관계자)는 이유로 반대해 왔다. 그런데 정부는 “기업의 부담을 신설하는 것이라 단계적인 적용이 바람직하다”(고용노동부)는 이유로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도 법 적용을 2년 유예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장태수 정의당 대변인은 “100인 미만 사업장은 전국 사업체의 99.5%에 해당한다. 5년 동안 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죽음에 손 놓겠다는 정부가 정부냐”고 비판했다. 반면, 김용근 경총 부회장은 “대기업도 3년 이상 유예해야 한다”고 맞섰다.

하준호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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