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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법 위협에도 시위 나선 홍콩 '웡 할머니'… "청년들 석방하라"

중앙일보

입력

성탄절 전날이었던 지난 24일(현지시간), 홍콩 최대 번화가인 침사추이 거리에 백발 노인 한 명이 등장했다. 어깨에는 영국 국기가 그려진 가방이, 양손에는 ‘SAVE 12’라고 적힌 네온사인과 노란 우산이 들렸다. 무장 경찰들이 수시로 그의 주변을 맴돌며 경계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서서 “자유를 위해 싸우자”고 외쳤다.

홍콩 민주화 운동가 알렉산드라 웡이 28일(현지시간) 홍콩 특별행정구역청 중앙인민정부 연락사무소 앞에서 홍콩 청년 12명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홍콩 민주화 운동가 알렉산드라 웡이 28일(현지시간) 홍콩 특별행정구역청 중앙인민정부 연락사무소 앞에서 홍콩 청년 12명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홍콩 민주화 운동가 알렉산드라 웡(64)이 돌아왔다. 웡은 두 달 전 중국 당국의 강제 구금 사실을 폭로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주인공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 웡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근황을 전했다.

웡은 지난해 8월 ‘범죄인 인도 조약’ 추진에 맞서 시위를 벌이던 중 갑자기 사라졌다가 14개월 만인 지난 10월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공안에 강제 구금됐었다고 주장했다.

갇힌 상태에서 '정신 교육'을 받았고 공안의 감시 속에 14개월의 가택연금을 당했다는 것이다. 웡은 인터뷰에서 “고통스러움에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7일(현지시간) 홍콩 민주화 운동가 알렉산드라 웡이 홍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년 간 중국 공안에 체포돼 구금됐다고 밝혔다. [AFP =연합뉴스]

지난 10월 17일(현지시간) 홍콩 민주화 운동가 알렉산드라 웡이 홍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년 간 중국 공안에 체포돼 구금됐다고 밝혔다. [AFP =연합뉴스]

하지만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꺾이지 않았다고 했다. 홍콩으로 돌아온 뒤에도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의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최근에는 대만으로 망명하려다 중국 해경에 체포돼 비공개 재판을 받는 홍콩 청년 12명의 석방을 촉구하는 ‘SAVE 12’ 시위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중국이 홍콩의 법적, 정치적, 시민적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항의하지 않으면 우리를 억압할 것이고, 우리는 더 많은 자유를 잃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나는 죽을 각오도 돼 있다”고도 했다.

지난 24일 홍콩 침사추이 거리에서 1인 시위에 나선 알렉산드라 웡(64, 왼쪽)과 그를 지지하는 시민. [에포크타임스 트위터 캡처]

지난 24일 홍콩 침사추이 거리에서 1인 시위에 나선 알렉산드라 웡(64, 왼쪽)과 그를 지지하는 시민. [에포크타임스 트위터 캡처]

시위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웡 할머니' 

회계사 출신인 웡은 2014년 ‘우산 혁명’ 때부터 지난해 8월 체포되기 전까지 자택이 있는 중국 선전과 홍콩을 오가며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 강제 구금 사건 이후에는 거주지를 홍콩의 한 호텔로 옮겼다.

홍콩 보안법에 다시 구금될까 두렵기도 하지만 홍콩을 떠날 마음은 없다고 했다. 그는 “그나마 홍콩 언론이 내 행방을 추적해 보도한다. 내 신변을 위해서도 홍콩이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대신 젊은 운동가들에게는 “(보호받을 수 있는) 영국이나 캐나다로 가 홍콩의 상황을 알려달라”고 당부한다고 했다.

웡은 지난 24일 홍콩 침사추이 거리에 해바라기 12송이를 놓고, 중국에서 체포된 홍콩 청년 12명 석방을 촉구했다. [에포크타임스 트위터 캡처]

웡은 지난 24일 홍콩 침사추이 거리에 해바라기 12송이를 놓고, 중국에서 체포된 홍콩 청년 12명 석방을 촉구했다. [에포크타임스 트위터 캡처]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웡 할머니(Grandma Wong)’로 불리는웡은 시위 현장에서 자신의 몸보다 큰 영국 국기를 흔들기로 유명하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불신과 반발을 드러내는 방법이자 홍콩에 법치와 교육 시스템을 정착시킨 영국에 대한 감사 표시라고 한다. 다만 최근 홍콩 경찰이 번번이 영국 국기를 빼앗는 바람에 대신 영국 국기가 그려진 가방을 메고 현장에 나선다.

FT는 그에 대해 “대표적인 홍콩 민주화 운동가인 조슈아 웡(24)이나 지미 라이(72)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홍콩 민주화 현장의 열기를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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