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능력도 용불용설(用不用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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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목은 왜 길까. 높이 달린 곳의 나뭇잎을 뜯어먹기 위해 목을 자꾸 치켜들다보니 목이 길어졌다는 것이 프랑스의 박물학자 라마르크가 주장한 용불용설(用不用說)이다. 자주 사용하는 장기는 진화하고 덜 사용하는 장기는 퇴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불용설은 유전자의 형태로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기린이 목이 긴 것은 원래 목을 길게 만드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때문이지 후천적으로 목을 많이 사용해서가 아니란 설명이다.

그렇다면 용불용설은 오늘날 완전히 용도가 폐기된 학설일까.

한국 여성에게 가장 흔한 암은 유방암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유방암이 위암을 누르고 여성 암 발생률 1위로 올라섰다. 해마다 인구 10만명당 21명의 유방암 환자가 발생하는데 이는 10년 전에 비해 두 배나 늘어난 수치다.

미국은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미국 여성 8명 중 1명은 평생에 한번 이상 유방암에 걸린다. 유방암 연구비 지원에 인색하면 다음 선거에서 낙선한다는 것이 의원들에게 불문율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유방암이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현대 여성들이 갈수록 유방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유방을 배우자를 위한 생식기관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유방은 아기에게 젖을 주기 위한 수유기관이다. 아기를 덜 낳고 모유를 먹이지 않을수록 유방암은 잘 생긴다. 조물주가 부여한 용도대로 사용하지 않은 탓에 유방암이 급증하는 것이다.

"최근 발기력이 떨어져 성생활이 두렵다. 비아그라를 먹으면 확실히 좋아지는데 이처럼 약물에 의존해 성생활을 유지하면 아예 성불구가 되는 것은 아닌가."

얼마 전 40대 독자에게서 받은 e-메일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요한 것은 비아그라를 먹을까 먹지 않을까 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경우든 왕성한 발기를 자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세달 이상 성접촉을 통한 발기를 경험하지 않으면 성기는 급속하게 위축되며 발기부전이 악화된다.

말그대로 용불용설이다. 성기능은 컨디션에 따라 일시적으로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가장 나쁜 것은 잠시 기능이 떨어졌다고 자포자기한 나머지 성생활을 아예 중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말 성불구가 된다.

이 경우 정답은 비아그라를 통해서라도 성생활을 주기적으로 유지해주는 것이다. 쓰다 보면 기능을 되찾아 약물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예전의 발기력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용불용설은 유방이나 성기에만 국한된 원칙이 아니다. 신체 어떤 부위에도 골고루 적용된다. 백화점이나 서점에서 오래 서 있는 직원들을 살펴보자. 이들은 자주 요통을 호소한다. 왜 그럴까. 선 자세에선 척추를 앞으로 당기는 근육을 사용하지 못하므로 이 근육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분들은 윗몸 일으키기처럼 등을 앞으로 숙이는 동작을 자주 해주는 것이 좋다. 반대로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척추를 뒤로 당기는 근육이 약해져 있을 터이므로 자주 등을 뒤로 젖혀주는 동작을 해주는 것이 좋다.

심지어 어릴 땐 눈병에 걸려도 안대를 착용해선 안된다는 주장까지 있다. 안대로 장기간 눈을 가리면 시력이 떨어짐은 물론 시각을 통한 뇌 발달에 장애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눈도 자주 사용할수록 발달한다는 것이다.

뒤로 걷기가 좋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뒤로 걷기를 통해 평소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발달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용불용설은 유전자를 통해 대물림되지 않는다. 그러나 개체의 당대에선 가장 확실하게 지켜지는 생물학의 대원칙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혹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말썽을 부릴 부위는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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