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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에 온갖 新藥이 널려있네

중앙일보

입력

해양 생물이 신물질 자원의 보고로 각광받고 있다. 하등 동물로만 여겨졌던 산호.해면.불가사리.바다달팽이 등의 몸 속에서 암치료 물질, 사람의 피부를 보호하는 성분 등이 속속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연구를 많이 한 육상생물로부터는 더 이상 신물질을 찾아내기가 어려워지면서 해양생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바닷속에 들어가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수많은 생물이 아직 탐구되지 않아 신물질을 찾을 확률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미국 연구팀이 심해 고둥에서 뽑아낸 지코니타이드란 물질은 진통 효과가 확인됐으며 환자 대상 실험(임상시험) 등도 거의 마무리돼 사용 허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또 해저 이끼가 가진 '브리오스타틴' 등 수십가지 물질이 항암제로서의 효능을 확인하기 위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한국해양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해양생물에서 발견한 신물질 중 치료 효과 등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고 학계에 보고된 것이 2천6백여종에 이른다.

우리도 해양생물에서 신물질을 찾는 성과를 거뒀다. 해양연구원 노정래 박사팀이 최근 발견한 '원도닌'은 암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SK케미칼에서 시험하고 있다.

암세포는 마구잡이로 혈관을 만들어 양분을 흡수하며 자라나는데, 원도닌이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것까지는 확인한 상태다.

이 물질은 남해에서 자라는 토종 해면동물에서 발견됐다. 발견된 곳이 섬 '원도'부근이어서 '원도닌'이라 이름붙였다. 해양연구원은 이 물질에 대해 미국과 일본에 국제 특허를 신청했다.

해양연구원은 1990년대 초 해양 신물질 탐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1백여종을 찾아냈으며, 이중 15종에 대해 물질 특허를 출원했고, 현재까지 7건의 특허를 얻었다.

부산대 최원철(생명과학부) 교수도 바닷말(海藻)인 곰피에서 노화 억제 물질을 찾아냈다. 바이오벤처인 렉스바이오사이언스는 올 초 이 물질을 원료로 노화방지용 기능성 화장품을 내놓았다.

선진국들은 신물질 탐구의 손길을 수심 수천m 지하의 심해저에까지 뻗고 있다. 특히 심해저 열수분출구 주변의 생물들이 관심의 대상이다.

이곳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하에 용암이 있어 물이 뜨겁고, 또 물 속에 중금속도 많이 있다. 이같이 특수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물은 몸속에 독특한 물질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해양과학기술센터(JAMSTEC)는 잠수정을 타고 심해 열수분출구로 가서 그곳에 사는 생물을 채집해 지상의 연구소에서 키워가며 각종 연구를 하고 있다. JAMSTEC는 단지 물질의 차원을 떠나 이들에게 중금속에 대한 내성을 갖게 하는 유전자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려는 연구도 하고 있다.

해양생물 연구는 기술과 돈이 필요해 선진국들이 독차지하고 있지만 뒤처진 나라들도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있다.

인도네시아나.파푸아뉴기니 등은 영해 안에서 해양생물을 채집해 외국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 안에 항암제 등 엄청난 부(富)를 안겨줄 물질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냥 앉아서 내줄 수 없다는 생각이다.

노정래 박사는 "해양연구원의 시설만으로는 신물질을 찾아도 신약으로서의 효능이 있는지 일일이 검증하기가 힘들다"면서 "많은 제약사와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여건을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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