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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이 쏘아 올린 의대생 국시 구제 카드…민주당 안팎서 파열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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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는 20일 KBS 1TV 일요진단에 출연해 "(재시험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한가, 절차가 정당한가 하는 여론이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며 "국민 여론도 좀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20일 KBS 1TV 일요진단에 출연해 "(재시험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한가, 절차가 정당한가 하는 여론이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며 "국민 여론도 좀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이런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상황까지도 감안해서 아마 조만간 정부의 결정이 있을 것입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20일 의사 국가고시(이하 국시) 거부 의대생에 대한 구제 가능성을 언급하자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내에선 거센 후폭풍이 발생했다.

정 총리는 KBS 1TV ‘일요진단’에 출연해 “국민들께서 그게 공정하냐, 절차가 정당하냐는 문제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정부가 현실적인 여러 가지 상황도 감안해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자가 “재시험 기회를 줄 수도 있다는 뜻인가”라고 다시 묻자 정 총리는 “그렇게 보실 수도 있다”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극성 지지층(문파)들이 장악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당원게시판에는 의대생들에 대한 적대감이 가득한 글들이 이어졌다. “정 총리 말이 사실이면 민주당 탈당한다”는 엄포성 글이 다수였지만 “보궐선거가 코앞인데 공정 문제가 또 불거지면 전략상 패착”이라는 훈수도 있었다. “정부 슬로건이 공정인데 정 총리의 행동에 민주당은 왜 아무런 액션이 없는가” 등 민주당에 반대 역할을 촉구하는 글도 많았다.

스텝 꼬인 민주당 

정 총리의 갑작스러운 유턴 시도에 비타협 노선을 유지해 오던 민주당은 스텝이 적잖이 꼬였다. 지난 9월 말~10월 초 국시 거부 국면에서 “치기 어린 응석만 담겼고 행동에 대한 책임은 없었다”(양향자 최고위원)라거나 “여론이 부정인 것은 사과 한마디 없이 이렇게 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 생각 때문”(김민석 보건복지위원장)이라던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의 입장은 변화가 없던 터였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의협이 정부와의 협의 끝에 파업에서 복귀했다. 하지만 당시 의대생들은 파업을 지속했었다. 사진은 대구 경북대병원의 의료진들. 뉴스1

지난 9월 의협이 정부와의 협의 끝에 파업에서 복귀했다. 하지만 당시 의대생들은 파업을 지속했었다. 사진은 대구 경북대병원의 의료진들. 뉴스1

이날 민주당 지도부는 말을 아꼈다. 이낙연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의료진의 고생이 눈물겹다”고 말한 뒤 ‘간호사’만을 콕 집어 찬사를 이어갔다. “세 아이를 둔 간호사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눈물짓는다”면서다.

비주류에 속하는 한 민주당 의원은 “초기 코로나 소강 국면의 여론에 기대 공공의대 드라이브를 너무 세게 걸었던 것부터 패착”이라며 “의대생 국시 거부로 한 번 꼬였고, 3차 대유행으로 두 번 꼬였다”고 말했다.

당 내부 “정세균이 옳다” vs “조율 없이 유턴”

정 총리 스스로 밝힌 입장 변화의 배경은 “국민 여론도 바뀌는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국민 여론이 중요할 것 같다”는 사회자의 말에 대한 답이었다. 국시 거부 직후와 지금은 여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허종식 민주당 의원이 리서치디엔에이에 의뢰해 지난 10월 14일 발표한 조사에선 재시험 ‘반대’가 57.9%로 ‘찬성’(36.9%)보다 높았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지난 8월 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국시 취소 의대생에 대한 재접수 반대' 국민청원. 57만여명이 찬성하자 청와대는 "국민의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사실상 재시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지난 8월 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국시 취소 의대생에 대한 재접수 반대' 국민청원. 57만여명이 찬성하자 청와대는 "국민의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사실상 재시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여론보다는 일일 확진자가 1000명을 오르내리면서 중환자 병상 부족과 함께 현실화된 의료 인력 대란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전공의와 의대생의 자발적 참여가 절실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메야 할 총대를 정 총리가 멘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정 총리의 ‘유턴’에 대한 찬반이 팽팽하게 갈리는 분위기다. 한때 강경파였지만 정 총리와 보조를 맞추기 시작한 인사들도 나타났다. 보건복지위 민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문제가 생기면 갈등을 풀어나가는 게 정부·여당의 자세”라며 “정 총리의 말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 9월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의대생들을 몰아붙였던 것보단 누그러진 모습이었다. 복지위 소속의 한 의원도 “의대생들이 자발적으로 선별진료소에서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다”며 “더는 의대생과 정부가 감정싸움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왼쪽부터)가 21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의료인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간호인력에 대해서만 거론했다.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왼쪽부터)가 21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의료인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간호인력에 대해서만 거론했다. 오종택 기자

그러나 복지위 소속의 한 초선 의원은 “당의 방침은 일관되게 재시험 불가론이었다”며 “정부 방침은 좀 갑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정 총리가 당과 조율도 하지 않고 방향을 틀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복지위원도 “의대생들의 진정한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며 “재시험을 허용하면 공정 문제로 여론이 달아오를 것”이라고 염려했다.

배종찬 인사이트K 소장은 “코로나 방역 성공 여부에 대선 주자로서 명운이 걸린 정 총리와 재·보선을 앞두고 지지층 여론 관리가 중요한 민주당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며 “정 총리와의 친소관계도 찬반양론이 갈리는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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