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터키 파병 왜 극렬 반대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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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터키 의회는 지난 7일 이라크 파병을 승인했다. 미국은 이를 환영했지만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는 즉각 반대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과도통치위는 터키 파병에 반대하는 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으며, 마흐무드 오트만 위원은 "파병은 잘못된 일이고 치안에도 보탬이 안되는 쓸데없는 짓"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수니파 이슬람교도가 국민의 99%를 넘는 터키는 이라크와 같은 이슬람권이고 국경을 맞댄 이웃이다. 그런데 이라크는 왜 터키의 파병에 이토록 반대할까.

◇쿠르드족에겐 압제자=터키 파병 반대세력의 주축은 북부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이다. 과도통치위의 반대 성명을 주도한 오트만 위원은 쿠르드족 대표다.

BBC방송은 쿠르드인들은 동족을 독가스로 학살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못지않게 터키에도 심한 적대감을 보인다. 6천8백만 터키 인구의 20%가 쿠르드인인데 터키 정부는 독립을 우려해 이들을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동화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터키는 자국 내 쿠르드 독립세력과 연대할까봐 가끔 국경을 넘어 이라크 내 쿠르드인 무장단체를 공격하고 일부 친터키 쿠르드 부족을 포섭해 종족 간 내전까지 유도해 왔다. 1천5백만~3천5백만명으로 추산되는 쿠르드인은 독립국가 없이 이라크 북부, 터키 동부, 이란 북서부 등에 흩어져 산다.

◇이라크인에겐 과거의 지배자=이라크는 16세기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까지 현 터키 공화국의 전신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결코 친할 수 없는 과거의 종주국인 셈이다.

이라크는 영국 보호령을 거쳐 32년에 영국에 협조한 하심왕가가 지배하는 왕국이 됐다. 아랍민족주의를 지향하고 외세에 반대하는 군인들이 58년 왕국을 전복하고 공화국을 세웠다.

◇일부 시아파도 적대감=병력 80만명의 터키군은 22년 터키 공화국의 건국 때부터 군출신인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가 주창한 국가의 세속화(비이슬람화)와 서구화의 주체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이슬람 신정국가를 꿈꾸는 이라크의 일부 시아파 지도자들은 터키군의 파병에 심한 거부감을 보인다고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보도했다.

◇주변국과의 관계=인구 2천4백만명의 이라크는 중동의 맹주를 꿈꿔왔다. 이웃 터키가 파병의 물꼬를 트면 주변 국가들이 너도나도 파병할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맹주는커녕 주변국에 휘둘리는 나라로 전락할 수 있다. 과도통치위가 7일 성명에서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가 이것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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