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 버릇'도 여든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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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 들어 처음 중간고사를 치르는 때다. 시험이 닥치면 대다수가 초조해져 커닝(cunning 부정행위)이라도 하고 싶다.

특히 내신성적이 입시의 주요 잣대여서 커닝은 학교에서 일상화됐다. 심지어 커닝을 묵인하는 교사도 있다고 한다.

학교 시험과 부정행위를 어떻게 볼까.

미국의 한 명문 사립고에 상원의원의 아들인 세드윅 벨(에밀 허시 분)이 전학을 온다. 그는 첫날부터 말썽을 피우고 교칙을 밥먹듯 어기는 문제아다.

벨의 담임은 그리스.로마사를 가르치는 헌더트(케빈 클라인 분). 한 사람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교육철학을 가졌다. 이 학교에선 전통적인 행사로 해마다 로마사에 관한 지식을 겨루는 경시대회가 열린다. 예선을 거쳐 세 사람만 본선에 나가 우승을 다툰다.

대회가 벨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 헌더트는 시험성적을 조작해서까지 그를 본선에 올린다. 하지만 본선에서 벨은 부정행위를 저지르고,이를 목격한 헌더트는 충격을 받는다.

그로부터 25년 뒤. 아버지의 힘으로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된 벨은 옛스승과 급우들을 자기 회사의 휴양지에 초대해 경시대회를 다시 연다. 25년 전 잃어버렸던 명예를 되찾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벨은 이날도 보청기를 이용해 커닝을 하다 스승인 헌더트에게 들킨다. 미국 영화 '엠퍼러스 클럽(The Emperor's Club)'(2002)의 줄거리다.

본지 학생 명예기자들이 또래들을 대상으로 부정행위 실태를 조사했는데, 초등학생도 셋 가운데 한명은 커닝을 했다. 고등학생은 커닝 경험자가 90%를 넘었다. 수법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개인휴대단말기(PDA)를 이용하는 등 갈수록 첨단화하고 있다.

문제는 대다수 학생이 부정행위를 잘못된 행동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세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한다. 수천억원을 빼돌려 추징당한 전직 대통령, 회계장부를 거짓으로 꾸민 대기업체 회장, 변호사 윤리시험에서 집단 부정행위를 저지른 예비 변호사 등 어른들의 모습이 미래의 자화상은 아닌지. 어떻게 살 것인가?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키며 살 것인가, 성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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