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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노화] 14. 인간은 왜 늙는가

중앙일보

입력

태어나서 20년이 지나면 우리 몸은 서서히 노화하기 시작한다.

우선 근육.뼈의 강도가 떨어진다. 80대가 되면 근육의 양이 20대 때의 25% 수준으로 줄어든다. 심장 박동도 느껴지며 혈압은 올라가는 것이 보통이다. 피부엔 주름이 생긴다. 눈도 노화된다. 뇌의 용량이 작아져 시각.청각.미각.후각 등도 둔감해진다. 60대의 70%, 80대의 85%가 지적인 능력의 저하를 경험한다.

인간은 왜 늙는가?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 이브 르복 박사는 "노화의 원인을 바로 알아야 늙지 않고 오래 사는 법을 찾을 수 있다"며 "그동안 왜 늙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가설들이 수없이 제기됐으나 모두 약점이 있어 정설은 아직 없다"고 단정한다.

지금까지 나온 가설들은 크게 예정설과 마모설로 분류된다.

예정설은 세월이 흐르면 사람은 늙게 돼 있다는 학설이다. 태어날 때부터 노화가 일어나도록 입력돼 있다는 것. 이 학설은 그러나 사람마다 노화의 속도가 천차만별인 이유는 설명하지 못한다.

마모설은 사람의 세포.조직.기관도 오래 쓰면 닳아 없어진다는 설이다. 이 학설에 근거해 다양한 노화방지법이 나왔다. 유해산소설과 이를 보완한 산화(酸化) 스트레스설이 여러 마모설 가운데 가장 널리 인정되고 있다.

◇ 유해산소설

이미 50년 가까이 된 학설이지만 노화의 원인을 일반인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장수'를 누리고 있다. 우리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유해 산소가 노화를 부른다는 것이 요체다.

재미 노화학자인 유병팔 텍사스대 명예교수는 1996년 이 학설을 토대로 산화 스트레스설을 제안했다. 유해 산소로 인해 세포가 산화된 결과 암.당뇨병.동맥경화 등 수많은 노화 관련 질환이 발생한다는 것.


이탈리아 로마의 최고보건연구소 지노 파르기 박사는 "'세포 테러리스트'로 통하는 유해 산소는 우리 몸이 에너지를 쓰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라며 "일상생활에서 (대개 호흡.소화 도중) 매일 1백억개나 만들어지는 유해 산소가 우리를 늙게 한다"고 설명한다.

핀란드 지바스킬대학 노인병연구소 에이노 헤이키넨 교수는 우리 몸을 시소에 비유한다. "시소의 한쪽엔 유해 산소, 다른 한쪽엔 유해 산소를 없애는 물질이 놓여 있다."

젊을 때는 세포 속에 유해 산소를 없애는 항산화(抗酸化)물질이 충분히 들어 있어 시소가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쥐는 생후 6개월 이후로 확인, 사람은 20세 이후) 유해 산소 쪽이 더 무거워져 균형이 깨진다는 것이다.

유병팔 교수는 "항산화물질엔 우리 몸 안에 있는 자연산 항산화물질(SOD.카탈라제.GSH.알부민 등)과 외부에서 식품 등을 통해 공급받아야 하는 항산화물질(베타카로틴.비타민C.E.셀레늄.폴리페놀 등)의 두가지가 있다"고 밝혔다.

동물실험에선 항산화물질을 먹은 쥐의 수명이 20%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노화학자들은 몸 안의 항산화물질이 몸 밖에서 공급받는 항산화물질보다 노화 억제에 더 유용할 것으로 본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 이철순 박사는 "몸 밖에서 공급받는 항산화물질이 과연 세포 안까지 들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아직 없다"며 "현재 미국의 항노화연구소에선 SOD 등 체내 항산화물질의 활성을 높이는 약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유해 산소가 덜 발생케 하는 것도 효과적인 노화억제법이다. 부산대 약대 정해영 교수는 "과식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운동을 과도하게 하면 유해 산소가 많이 생긴다"며 "유해 산소 퇴치에는 절식.적당한 운동.웃음.사랑.금연이 명약"이라고 말했다.

다만 서울 노방의원 권용욱 원장은 "유해 산소를 거의 제거했는데도 노화가 계속 진행됐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있다"고 유해산소설의 약점을 지적했다.

◇ 호르몬 균형 상실설

블라디미르 딜만 박사가 처음 제기한 학설로 마모설을 호르몬에 적용시킨 것이다.

미국노화학회 로널드 클라츠 회장은 "나이가 들면 호르몬 분비량이 감소, 호르몬 간 균형이 깨지면서 노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특히 성장호르몬.남성 및 여성호르몬.DHEA 등은 나이가 들면 급격히 줄어든다. 이로 인해 활력이 떨어지거나 뼈가 약해진다는 것. 미국.유럽의 대다수 노화방지 클리닉들은 이 가설을 근거로 부족한 호르몬을 보충해준다.

그러나 유병팔 박사는 "일부 호르몬은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정 호르몬을 외부에서 공급하면 호르몬 상호 간 균형이 깨져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 텔로메라제설

염색체 끝에 있는 텔로미어가 수명을 결정한다는 이론. 한때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으나 요즘은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점점 짧아져 결국 소실되면 세포가 망가지고 노화.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텔로미어를 원상복구할 수 있는 효소를 발견했다. '불멸의 효소'로 불리는 텔로메라제다. 이 효소는 체세포엔 없고 생식세포.암세포.줄기세포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라츠 회장은 "앞으로 텔로메라제 억제제가 나오면 암세포의 분열을 멈추게 하거나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이재원 박사는 "사람의 경우 세포 분열이 반복돼도 텔로미어가 상대적으로 덜 짧아진다"며 "일부 노화방지 클리닉에서 주장하듯이 텔로메라제를 수명연장약으로 주입할 경우 오히려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 유전조절설

'장수하는 부모를 둔 사람이 오래 산다'는 것이 이 학설의 핵심이다. 유전자(DNA) 내에 이미 자신이 얼마나 빨리 늙고, 얼마나 오래 살지 등이 입력돼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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