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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라면상무 등 옥스퍼드 사전에도 올라간 ‘갑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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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호 21면

콩글리시 인문학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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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꼭 살려 주십시오!” 국회 예산심의 중에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조재연 법원행정처장(대법원판사)에게 삭감된 LX 사업비 3000만원을 배정해 줄 테니 절실하게 간청해 보라고 재촉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예산권을 쥔 국회의원의 갑질을 보았다. 박 의원은 판사 출신인데 국민세금을 제 쌈짓돈인 양 주고 말고 하겠다는 것 자체가 권한남용이란 논란을 일으켰다.

막말·폭언 등 여러 형태로 표출 #국회의원·공직자 갑질도 심각

“개XX들, 국토2차관 들어오라고 해!” 이건 여당 원내대표의 명령이었다. 민주당 윤아무개 의원은 “카카오 들어오라 해!”라며 서슬이 시퍼렇게 지시했다. 지난 11월 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은 8·15 광화문집회 주동자들을 두고 “살인자!”라고 소리쳤다. 코로나19 전염 위험 속에 대규모 집회가 온당치는 않지만,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민을 살인자라고 부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갑질 중 갑질이다. 그 뒤 대통령이 실장을 불러 질책이라도 했다는 소릴 듣지 못했다. 갑질이 상하 관계, 고용 관계, 남녀 관계, 노소 관계 그리고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국회의원과 공직자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래전 한나라당 이노근 의원은 미국 등 선진국 입법사례를 좇아 국회의원의 막말·폭언·갑질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갑질이 우리 사회문제로 클로즈업된 것은 2013년 1월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대리점 강매 때 였다. 이어서 4월 포스코 계열사 ‘라면상무’사건이 터졌다. 라면상무는 LA행 기내에서 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려 미국에 입국하지 못하고 그대로 귀국했다. 이듬해 대한항공의 땅콩회항(nut rage) 등 조씨 일가의 오너갑질이 또 다른 기폭제가 됐다. 갑질은 막말, 폭언, 폭행, 임금착취, 제품 밀어내기, 차별대우, 부당노동행위, 불법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갑질은 영어로 gapjil이라고 쓰는데 옥스퍼드사전에도 올라가 영어어휘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gapjil이란 한국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의 상대방에 대한 오만하고 권위적인 태도나 행위다(an expression referring to an arrogant and authoritarian attitude or actions of people in South Korea who have positions of power over others).

정부도 심각한 갑질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집값 폭등을 부채질해 놓고 재산세와 종부세를 2, 3배 대폭 올린 게 대표적이다. 권력형 비리와 범죄를 수사하던 검사들은 모조리 좌천, 또는 지방으로 보낸 법무부 인사 전횡(專橫)은 지난 24일 검찰총장 업무정지로 정점을 찍는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겠다고 국가 주요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했으니 탈원전 정책 못지않은 갑질이다. 가덕도는 깊은 바다를 메워야 하고 바람이 강한 데다가, 접근성이 떨어지고 건설비용이 너무 들어, 경제성이 낮다고 프랑스 전문가팀이 결론을 낸 지 오랜데, 굳이 새로 짓겠다는 무리수 또한 갑질이다.

이진호가 쓴 『한국사회와 갑질문화』(이담북스 펴냄)의 부제는 이렇다. “모든 갑질은 청와대에서 시작된다.”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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