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역소 "사스 의심돼도 일단 통과"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에서 일주일간 머물다 귀국한 한 기업인은 보건소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목이 심하게 아프고 기침이 심해 잠을 못자다 5일 아침 보건소에 전화했더니 '무조건 입국 후 5일이 지나야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다'며 오지 말라는 투였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기침할 때 호흡이 불편한데 가족들과 한방에서 자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하고 있다.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는 가운데 국내의 허술한 방역체계가 도마에 올랐다.

지금까지 중국 광둥성.홍콩 등 위험지역 출입국자가 많은 인천.부산.제주공항이나 인천항 등은 큰 무리 없이 방역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사스 대책본부 격인 국립보건원 방역과 직원 네 명이 사스 예방책 마련, 유사환자 확인 등 폭주하는 업무처리에 부대끼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홍콩 등 위험지역들의 정보에 어둡다보니 인천국제공항을 거쳐간 대만인 사스환자에 대해 국가정보원에 의존했을 정도다. 국제 공조가 어렵다보니 해외로부터 사스 의심 환자의 국내 입국 여부 및 경로를 파악하는데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스 초기에 최소한 중국.홍콩 두 곳 만이라도 인력을 파견했어야 했다"면서 지금이라도 사람을 파견해 사스 진단법이나 감염자 정보 등을 입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검역소의 전문능력도 떨어진다. 해외 입국자 관리는 인천국제공항.통영.동해.군산 등 전국 13곳의 검역소가 담당하지만 의사가 있는 곳은 인천국제공항밖에 없다. 검역소장과 검역관 중 적어도 한 명은 의사여야 한다는 현행 검역법의 규정을 정부 스스로 어기고 있는 것이다.

검역소의 한 관계자는 "의학적 지식이 없다보니 감염이 의심되더라도 우선 통과시켜놓고 사후에 조치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에는 사스 대책본부가 없다. 환자가 생기면 이들을 격리할 법적인 근거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보건원 관계자는 "환자가 생기면 격리할 병원으로 11곳을 선정했지만 격리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만일 환자가 격리조치를 거부하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과의 정기항로가 가장 많이 이어지는 인천항을 비롯해 군산.통영 등 주요 항만 검역소들은 항만으로부터의 사스 유입에 대비해 검역조치를 강화하고 나섰다.

종전에는 입항 전 선장으로부터 환자 발생 여부를 보고받고 이상이 없으면 승객을 그냥 통과시켰으나 지금은 직원이 배에 직접 올라가 질문지를 받고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국립인천검역소 김영균 소장은 "중국 광둥성.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오는 화물선의 경우 승무원의 상태를 직접 확인한 뒤에도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고 바로 출항시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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