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홍성남 신부의 속풀이처방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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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우리나라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대화 주제가 두 가지 있다. 종교와 정치. 특히 정치 이야기는 삼가야 한다. 정겨운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치고받고 싸워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총 없이 설전을 벌이는 내전 중이다. 정치적 의견으로 갈라져서 서로를 삿대질하고 있다. 혹자는 그렇게 토론을 벌이는 것이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라서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좀 다르다.

비판 없는 사회 위험하고 #획일화되면 미성숙 판쳐 #지나친 정의감 돌아봐야

민주사회와 독재국가의 차이 중 하나는 의견의 다양성과 획일화다. 대부분의 독재국가들, 특히 사회주의 국가들은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면서 국민들에게 획일화 된 사고를 강요한다. 우리나라 역시 군부통치 시절에 그러하였지만 지금은 정치적 후진국을 면한 것처럼 보인다. 여러 매체들이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것을 들으면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으며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고 수렴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분된 획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글을 쓰면 신부님은 어느 쪽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람 마음을 치유하는 데 좌냐 우냐를 따지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고 대답해주고 싶다. 똑똑한 척하는데 가장 멍청한 것이 단답식 답을 전제로 한 질문이다. 가끔은 자칭 지식인들이 문제아들이다.

양분된 획일화는 당연히 국민정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획일화된 교육, 즉 주입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창의성이 떨어지고 개성이 사라진다고 한다. 앵무새처럼 남이 가르쳐준 것을 반복하는 기계적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고 그들을 이단이나 사회 부적응자로 몰아간다. 집단 안에서 목소리가 큰 몇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고, 대다수는 집단 순응주의자가 된다. 내부에 비판자가 없는 집단은 위험하다. 다양한 비판적 이론을 내놓는 지식인들이 사라지는 국가는 위태롭다.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지식인들을 없앤 후 문화 후진국으로 전락했고, 캄보디아는 킬링 필드 후 나라가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나라들이 강 건너에 보이는 불난 집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속풀이처방 12/10

속풀이처방 12/10

획일화가 심해지면 심리적 방어기제 중 미성숙한 것들이 판을 친다. 가장 심한 것이 편 가르기. 편 가르기는 어린 시절 철없는 아이들이나 하던 짓인데 어른이 되어서도 내 편 네 편 따지는 것은 심리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편 가르기는 심리용어로 분단(splitting)이라고 한다. 자아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 자신과 대상을 온전한 개체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으로만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또 하나의 문제적 방어 기제는 반동 형성이다. 겉과 속이 다른 것으로, 어떤 것에 대하여 적개심이나 혐오감을 갖는 것은 자신도 같은 부류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동성애 가능성이 높고, 부자들을 싸잡아 도둑놈들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고, 적개심을 가지고 정의 실현을 외치는 사람들이 부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지나친 표현은 그 내부에 반대되는 욕구가 숨어있기에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계속 사용하면 건강한 인간관계 형성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정상적 발달이 불가능하며, 공동체는 분열을 거듭하면서 점차 파멸의 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주입식·군대식 사고방식이 강해서 그렇다. 교육제도 역시 일류대학 입시만을 목표로 삼고 개성을 살려주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지 못한다. 또 하나는 정치인들의 문제다. 국민을 편 가르기 하도록 선동하여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부패한 정치인들이 아직도 건재하다.

그렇다면 어떤 처방이 좋은가? 그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짤막한 돌직구를 던진다. “너희 중 죄 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이 말씀은 자기 문제를 보라는 직언이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기도 한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회에 해를 더 많이 끼쳤음을 역사가 증명한다. 지금은 자신의 지나친 정의감이 어떤 문제를 내포하는 것인지 살펴볼 시간이다.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