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원격수업으로 전환하고 학원은 아예 영업 중단시켜놓고 PC방은 열어놓는 게 말이 되나요. 학교ㆍ학원이 PC방보다 위험하다는 근거라도 있는 건가요.”
중1, 3 두 아들을 둔 주부 유모(45ㆍ서울 영등포구)씨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나마 간간이 가던 학교 조차 원격수업 전환되고 학원은 아예 문을 닫으니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기만 한다”라고 하소연했다. 유씨는 “주변에 학원 대신 거리두기 단계 영향을 받지 않는 개인 과외수업으로 갈아탄 집도 많은데 우리집은 비용이 부담스러워 엄두도 못낸다. 기말고사가 코앞인데 너무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국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격상된 수도권의 모든 학교가 8일부터 3분의 1만 등교할 수 있게 됐다. 서울의 경우 중ㆍ고등학교는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됐다. 또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내 모든 학원과 교습소는 운영이 중단된다. 이에 따라 학습공백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의 목소리가가 커지고 있다. PC방ㆍ멀티방 등 실내 오락 시설은 밤 9시까지 제한적 운영할 수 있어서 형평성 논란까지 일고 있다.
당초 정부가 제시한 2.5단계 방역 지침에 따르면 학원은 집합금지 대상이 아니다. 수도권 소재 학원 등에 내려진 집합금지는 거리두기 3단계에 해당하는 조치이다. 2.5단계에서 학원은 시설 면적 8㎡당 1명으로 인원을 제한하거나 좌석 두 칸을 띄워 오후 9시 전까지 제한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도록 돼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전략기획반장은 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젊은 청장년층 중심의 감염확산이 계속 커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서 감염의 위험성이 크다고 하는 전문가들과 질병관리청 등의 의견을 반영해서 이번 수도권에 대해서는 학원을 전체적으로 집합금지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맞벌이 가정 초등학생의 경우 돌봄 목적으로 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수도권 초등학교가 주1~3회 제한적 등교를 하면서 학원을 활용해 돌봄 공백을 메워온 맞벌이 부모들도 애를 태우게 됐다. 이모(36ㆍ경기 안양시)씨의 아들(7ㆍ초등1년)은 주3회 등교 수업을 받는다.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태권도ㆍ미술ㆍ영어학원 등을 보내왔다. 그런데 이번 조치로 학원이 문을 닫게 되면서 아이 혼자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됐다. 학교에 긴급돌봄교실이 있지만 이미 수요가 넘쳐 자리가 없다고 한다. 이씨는 “남편과 재택근무 일수를 최대한 늘려도 한계가 있다. 연차휴가는 이미 지난번 거리두기 때 다 썼다”며 “일단 지방에 계신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봐주러 오기로 했는데 장기화되면 답이 없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학원총연합회는 7일 “특정인만 출입하는 학원만 예외적으로 3단계에 해당하는 집합 금지 조처를 적용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다수 학생이 이용하고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PC방이나 영화관은 거리두기 2.5단계 조처대로 오후 9시까지 운영하는데, 정부가 학원에만 집합 금지 조처한 것은 학생들의 외출과 이동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에도 맞지 않는다”는 입장문을 냈다.
정기석(전 질병관리본부장)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수도권의 확산이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이번 대유행은 유행 곡선이 시작부터 두툼해서 1월까지 계속 피크가 이어질 수 있다. 가마솥에 물이 서서히 끓어올라 식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과 같은 원리다”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생활방역 조치가 근거에 입각해서 정교하게 이뤄져야 국민들의 생활 패턴을 바꿀텐데 그러지 못해서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중수본의 손 반장은 “이번 조치로 맞벌이 가정의 돌봄 공백이 생기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관련 부처와 연차휴가를 좀 더 인정해주는 등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대체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일하는 부모가 연차를 더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지역사회 숨은 잠복자가 많다고 판단된다. 또 최근 학원가 같은 밀집 공간에서 감염 사례가 여럿 나타났다. 현 상황을 ‘대유행 단계’라고 본다. 이제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등 개인 위생수칙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방어가 어렵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