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좀 살아나나 했더니…원화값 급등 악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3면

원화값이 달러당 1080원대로 급등하면서 수출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중소기업의 62%가 채산성 악화를 우려한다. 지난 1일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 수출 화물 운송차량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원화값이 달러당 1080원대로 급등하면서 수출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중소기업의 62%가 채산성 악화를 우려한다. 지난 1일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 수출 화물 운송차량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원화값이 급등(환율은 급락)하며 수출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에선 달러 약세의 흐름이 강해지면서 원화값을 끌어올려 수출기업의 채산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달러당 1082.1원, 석달새 100원 뛰어 #중소기업 62% “수익성 악화했다” #손익분기점 환율은 1118원 꼽아 #대기업 71%도 “내년 경영계획 미정”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국내 967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6일 내놨다. 이 조사에선 내년 1분기 최대 애로사항으로 ‘원화 환율 변동성 확대’(16.8%)를 꼽은 기업이 가장 많았다. 특히 중소기업의 고민이 깊다. 환율 변동 위험에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 곳이 많아서다.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가 308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환율 하락(원화값 상승)에 따른 영향’을 조사한 결과다. 조사 대상 기업의 62.3%가 “환율 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했다”고 답했다.

중소기업들이 보는 적정 환율은 달러당 1181원, 손익분기점 환율은 달러당 1118원이었다. 원화값이 달러당 1118원보다 비싸지면 수출을 해도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난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달러당 1082.1원에 마감했다. 지난 9월 초(달러당 1180원대)와 비교하면 원화값은 석 달 새 달러당 100원가량 뛰어올랐다. 김태환 중기중앙회 국제통상부장은 “원화 강세 추세가 연말까지 지속할 것”이라며 “수출 중소기업의 채산성 악화를 방지하고 수출확대를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금속제조업체인 A사 관계자는 “아직 버틸 수는 있는 단계지만 (달러 약세, 원화 강세) 장기화에 대비해 업종별 협회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급등하는 원화값, 수출 증감률 추이

급등하는 원화값, 수출 증감률 추이

기계제조업체인 B사 관계자는 “(그동안 부진했던) 실적을 수출 호조로 만회할 시점에 악재를 만났다”며 “거래 단가를 올리거나 (구매) 물량을 늘려달라고 (수출 거래처와) 협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6000억원, 영업이익률은 2.2% 수준이었다. 1000원어치를 팔면 영업이익으로 22원을 올렸다는 얘기다.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 영업이익률은 1%대로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현재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하도급 업체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내 기업 열 곳 중 일곱 곳은 내년 경영계획을 아직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6일 공개한 매출액 상위 기업 대상 설문조사 결과다. 전체 응답 기업(151개 사)의 71.5%는 내년 경영계획의 ‘초안만 수립’(50.3%)했거나 ‘초안도 수립하지 못했다’(21.2%)고 답했다. 특히 철강업체는 내년 경영계획을 확정한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자동차 부품 관련 기업도 경영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비율(76.0%)이 높았다.

국내 기업 네 곳 중 세 곳(74.8%)은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실적 회복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적 회복을 예상하는 시점으로는 2022년 이후(29.8%)가 가장 많았고 내년 3분기(27.8%)와 내년 4분기(17.2%)의 순이었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같은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경영환경 전망이 어렵다”며 “기업의 성장동력이 약화하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기·김영주·최선욱 기자 humanest@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