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인근에 조성된 신도시 오다이바(ぉ台場)엔 현대적인 고층 건물과 모조 ‘자유의 여신상’등 명소가 많아 해마다 4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특히 후지TV 등이 본사를 옮겨온 뒤론 오다이바 곳곳이 드라마의 촬영지로 활용돼 관광객 중 상당수는 기억 속의 명장면을 찾아온 아시아인들이다. 1990년대 이후 아시아 각국의 지상파·케이블 채널을 넘나들어온 일본 드라마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최근 드라마 인기 주춤
지난달 25일 일본 드라마 수출을 주도해온 후지TV 본사를 찾았다. 그런데 로비며 사무실 곳곳엔 난데없이 '춤추는 대수사선2''g@me' 등 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국내에서도 1편이 개봉된 바 있는 '춤추는 대수사선'은 원래 97년 방영된 TV 드라마 시리즈.
이 시리즈가 "경찰 드라마의 역사를 바꿨다"는 평가와 함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자 후지TV는 98년 직접 영화 제작에 나서서 1백억엔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거기다 올 여름 5년 만에 개봉한 '춤추는 대수사선2'는 지금까지 1백60억엔의 수익을 내 일본 영화 흥행 기록을 깨뜨리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 수출도 방송사 경영에 도움이 되긴 한다. 그러나 인기 드라마를 영화로 만들고, 영화까지 수출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 아니겠느냐"고 고이와이 히로요시 후지TV 영화제작부 부부장은 반문했다.
비단 후지TV뿐 아니라 TBS 등 상당수 일본 방송사들이 앞다퉈 영화 제작에 뛰어드는 추세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서라지만 이면을 살펴보면 97~98년 정점을 이뤘던 일본 드라마 붐이 최근 몇 년새 하락세를 타고 있는 게 큰 이유다.
스타 캐스팅과 잘 짜여진 대본, 회당 4천만엔 이상의 제작비 투입 등 일본 드라마의 질적 우수성을 보장하는 제작 여건은 그대로인데 외부 상황이 달라졌다. 한류(韓流)의 부상이 대표적이다.
"현실적인 일본 드라마와 달리 한국 드라마는 낭만적인 세계를 그려 젊은 여성들이 빠져들기 쉽다"(샐리 청 홍콩 대공보 기자) "남녀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는 일본 드라마보다 폭넓은 가족관계를 다루는 한국 드라마에 중화권 시청자들이 더 공감한다"(이와부치 고이치 일본 국제크리스천대 교수)는 평가 속에 최근 일부 국가에선 한국 드라마의 방송 편수가 일본 드라마를 역전했을 정도다.
*** 방송사들 영화로 눈돌려
이처럼 한국 드라마의 높아진 위상 때문에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국내에서 일본 드라마의 방송을 허용한다 해도 큰 신드롬은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MBC드라마넷의 김동진 국장은 "지난해 합작 드라마 '소나기 비 갠 오후'를 제작하는 등 협력 관계인 후지TV의 '춤추는 대수사선''도쿄러브스토리''101번째 프로포즈' 등을 가계약해놓은 상태"라면서 "초기에 약간의 붐을 기대하긴 하지만 대박을 터뜨릴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3대 지상파 방송사들은 '러브레터''셸 위 댄스' 등 국내에서 웬만큼 흥행에 성공했던 일본 영화의 판권을 사두고, 우선 이들 영화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을 지켜본 뒤 드라마 방영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내년 1월부터 '18세 이상 관람가''제한상영가' 등급까지 개방되는 일본 영화에 대한 전망도 그리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 2~3년새 한국 영화의 지지층이 넓어진 데다 "일본 성인물이 인터넷을 통해 범람하는 지경이라 본격적인 성인영화가 들어와도 많은 관객을 끌어모을 것 같진 않다"(영화평론가 김의찬)는 것이다.
하지만 "품위있는 섹스물 등 매력적인 영화들이 다양하게 수입된다면 국내 영화의 틈새 시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영화평론가 전찬일)는 의견도 있다. 5년 전 수입된 뒤 등급 제한에 걸려 개봉되지 못했던 야쿠쇼 고지 주연의 '실락원'이 그런 예로 꼽힌다.
*** 韓流 맞설 묘안 찾기도
일본 방송.영화계 관계자들도 이런 분위기를 충분히 감지하고 있다. 따라서 다국간 합작을 통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계획을 구상 중이다.
일본 3대 영화사 중 하나인 쇼치쿠(松竹)의 이토 모리토 영화제작실장은 "현재 중국 여배우를 주연으로 기용한 영화, 대만 감독 허우샤오시엔에게 메가폰을 맡긴 영화 등 다양한 합작 영화를 촬영 중"이라면서 "한국 여배우와 감독을 빌려와 '러브 레터' 같은 영화를 찍는다면 한국에서도 먹힐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도쿄=신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