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다시 심판대 선 전두환···그가 잘못 뉘우치기엔 23년은 짧았다

중앙일보

입력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30일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광주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판사는 이날 전씨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뉴스1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30일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광주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판사는 이날 전씨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뉴스1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기립해 있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기립해 있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

1997년 내란·뇌물 등 무기징역 확정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89) 전 대통령이 30일 광주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고 조비오 신부 '5·18 헬기사격' 주장 #전두환, 회고록서 "거짓말쟁이" 비난 #법원, 사자명예훼손 '집유 2년' 선고

 1997년 4월 17일 육사 동기인 노태우(88) 전 대통령과 대법원에서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의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의 확정판결을 받은 지 23년 만에 또다시 법의 심판을 받은 셈이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2205억원, 노 전 대통령은 2628억원의 추징금도 확정됐다.

 전 전 대통령이 법정에 처음 서게 된 건 1995년 김영삼 정부가 5·18 특별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은 "다시는 이 땅에서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뇌물수수로 국가 경제를 부패시키는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게 시대적 소명"이라며 전 전 대통령에게 사형, 노 전 대통령에겐 무기징역을 각각 구형했다.

30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동구 지산동 광주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동구 지산동 광주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육사 동기' 노태우는 징역 22년6개월

 당시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는 전 전 대통령에게 사형, 노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했다. 1996년 3월 1심 재판 당시 두 전직 대통령이 웃으며 악수를 한 뒤 서로 어깨를 두드리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 시민이 "살인마들아 너희들이 무슨 스타냐"라고 소리쳤다. 이에 아들 전재국씨 등 전 전 대통령 가족과 측근들이 "이 XX야"라고 소리친 뒤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같은 해 항소심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으로 감형받았다. 대법원은 이듬해 이 형을 최종 확정했다.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전 전 대통령은 투옥 직후 "김영삼의 정치 보복, 정치 탄압"이라며 단식 투쟁을 벌였다. 이후에도 자신은 정보기관 수장에 불과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1987년 6월 10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민정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 민정당 대표 손을 치켜들고 환호하고 있다. 중앙포토

1987년 6월 10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민정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 민정당 대표 손을 치켜들고 환호하고 있다. 중앙포토

수감생활 2년…김영삼 정부 '특별사면'   

 두 전직 대통령이 실제 수감 생활을 한 건 2년 정도다. 1997년 12월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이회창·이인제 세 후보 모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복권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그해 12월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역 감정 해소와 국민 대화합이란 명분을 내세워 특별사면으로 석방했다.

 특별사면으로 두 전직 대통령은 풀려났지만, 추징금 납무 의무는 남아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은 추징금 2205억원 환수를 놓고 본인 명의로 된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며 납부를 거부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2013년 9월 장남 전재국씨가 추징금 완납 계획을 발표했으나 아직 1000억원가량 납부하지 않은 상태다.

 최근엔 검찰이 1997년 판결에 기초해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 전 전 대통령 부부가 사는 연희동 자택을 공매에 넘기자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은 2628억원의 추징금이 확정된 지 16년 만인 2013년 9월 완납했다.

30일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이 1심 선고 직후 광주지법 정문을 빠져나가자 5·18 단체 회원들이 계란과 밀가루를 차량에 뿌리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30일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이 1심 선고 직후 광주지법 정문을 빠져나가자 5·18 단체 회원들이 계란과 밀가루를 차량에 뿌리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全, 꾸벅꾸벅 졸아…"광주시민 우롱"

 전 전 대통령은 강산이 두 번 바뀐 뒤 피고인 신분으로 다시 법정에 섰다. 그는 2017년 4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향해 헬기 사격을 했었다고 주장해온 고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기소됐다.

 올해 아흔 살인 전 전 대통령은 30일 재판에서도 시작된 지 10여 분 만에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광주지법 정문에서 엄벌을 촉구하던 5·18 단체 회원들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전두환이 광주시민을 우롱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재판을 맡은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는 "5·18 때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전 전 대통령이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전일빌딩 탄흔 감정서'를 핵심 근거로 조 신부의 주장을 '진실'로 판단했다. 국과수는 2017년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현장인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10층에 생긴 수백발의 탄흔이 "헬기에서 하향 사격한 결과"라는 공식 보고서를 광주시에 전달했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처럼 역사를 왜곡하고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자세는 과거가 아닌 현실로 다가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며 "판결 선고를 계기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진심으로 사과하길 바란다"고 했다.

광주광역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