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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논란 재정준칙 그대로 입법예고…광범위한 예외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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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한국형 재정준칙’의 법적 근거가 담긴 국가재정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나랏돈을 쓸 때 준칙을 지키도록 해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위기 시 준칙 한도를 넘어 예산이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할 수 있도록 광범위한 예외 조항을 뒀다. ‘맹탕’ 비판을 받은 원안에서 변함은 없었다.

기획재정부가 30일 입법예고한 국가재정법 일부 개정안의 핵심은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이다. ‘기재부 장관은 예산안 또는 추경안을 편성할 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국가채무 및 통합재정수지 적자를 일정 수준 이내로 관리해야 하며, 한도를 초과하는 경우 재정 건전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개정 법안에 담겼다.

다만 정부는 예외 상황으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인명 또는 재산의 피해 정도가 매우 크거나 사회적·경제적으로 영향이 광범위한 재난(대규모 재해)이 발생한 경우 ▶외환위기,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에 준하는 성장·고용상의 충격이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을 명시했다. 예외에 해당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재정준칙과 상관없이 빚을 더 내서라도 예산을 짤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정부는 국가채무와 통합재정수지를 각각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60%, -3% 이내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2025년부터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예외 조항이 광범위한 데다, 구체적인 한도는 정부가 언제든 변경할 수 있는 시행령에 위임했다. 정부의 잣대에 맞춰 예산과 추경을 편성할 수 있게 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애초에 재정준칙의 한도가 높게 설정된 데다 시행령을 통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점도 문제”라며 “예외 조항까지 많아 사실상 유명무실한 준칙”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 세계잉여금(해당연도에 정부가 쓰고 남은 돈)의 50% 이상을 나랏빚 상환에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재정 지출이나 조세 감면을 해야 하는 법을 만들 때는 이에 따른 재원 조달 방안을 법안에 첨부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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