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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모호…누구든지 가해자 전락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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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호 09면

포괄적 차별금지법 지상 토론

이은경 변호사

이은경 변호사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도입한 국가는 전 세계 195개국 중 35개국 정도다. 우리나라도 정의당이 발의하고 국가인권위위원회가 제안한 차별금지법안을 중심으로 제정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법안이 마련한 차별 개념과 차별 사유는 여전히 모호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다. 차별이 금지된 영역과 차별 구제 및 제재 조항은 광범위하고 남용될 우려가 높다. 또 법안은 남성과 여성 이외의 제3의 성을 도입했다.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포함한 수많은 차별 사유는 개개인 생활 영역 상당 부분을 규제한다. 본격적 논의에 앞서 국민의 알 권리부터 보장하고, 찬반 논쟁을 적극적으로 고취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를 향한 첫걸음이다. 마치 반대론자들은 차별을 조장하는 혐오세력인 듯 매도하는 것은 민주주의 죽이기다. 반대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 바로 독재의 시작이다.

이래서 반대 #제3의 성 인정은 헌법 가치와 충돌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 지나쳐 #사상의 자유 막아 사회 침묵 조성 #포괄적 아닌 사유별 신중 접근해야

해당 법안을 살펴보면 먼저 차별 개념이 지나치게 상대적·가치적·유동적이다. 특히 직접 차별이란 분리, 구별, 제한, 배제, 거부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혹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란 평등의 원칙에 반하진 않는가.

고의 없이도 결과만으로 규제할 수 있는 간접 차별은 선의로 행동한 사람도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 괴롭힘, 성희롱과 차별표시·조장 광고행위를 포섭한 것은 차별 피해자 주장만으로 누구든지 가해자로 전락하게 할 가능성을 남긴다.

신중한 선택이 필요한 차별 사유는 ‘등’을 붙여 사유의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성별 중 분류할 수 없는 성이나 분류하기 어려운 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는 성의 2분 법적 구분을 없애고 헌법이 규정한 혼인과 가족제도를 재편성하려는 시도다. 헌법 개정 없이 논할 사안이 아니란 뜻이다.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역시 주관적이고 불확정적 개념이다. 그 스펙트럼도 넓다. 개념이 불명확한 사유는 얼마든지 쉽게 악용될 수 있다. 성 소수자 등이라고 속여 차별을 호소할 경우 부득불 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생물학적 남성이 입대를 앞두고 성별 인식이 여성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할 경우에는 징집이 가능한지도 고민해야 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법안을 추진하는 측은 차별 영역이 크게 4가지뿐이니 안심하라고 말한다.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공공서비스 이용에서 차별할 수 없게끔 했다. 그러나 이는 자유롭게 선택하고 표현할 수 있던 행위들이 대폭 금지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계약의 자유를 비롯한 사적자치의 원칙이 후퇴할 것이다. 특히 교육·직업훈련 영역이 문제다. 사람들의 사고와 판단을 제한하게 하기 때문이다. 각종 사상과 정치적 의견, 종교적·도덕적 논의마저 차별에 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면 침묵이 최선이란 냉소만 남을 것이다. 사상의 자유가 차별이란 이름으로 봉쇄해 버릴 수 있다.

무엇보다 차별 구제 및 제재에 관한 절차 규정은 독소조항이 많다. 악의적 차별의 경우 5배 배상까지 인정한 징벌적 배상을 도입했다. 가해자 중심의 입증책임도 적용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 입장에서 ‘차별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단 말인가. 진정과 소송은 이제 우리의 친숙한 일상이 될지 모른다. 주체사상, 이단 종파, 다자연애 등에 대한 반대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겐 ‘전재산몰수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송을 당할 경우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면 최대 25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차별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그러나 개인 선택이 가능한 가치판단 영역까지 묶어 하나의 기본법으로 강력하게 규제하려는 건 분명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인류가 목숨을 걸고 쟁취해 온 양심과 종교, 사상과 표현의 자유와도 충돌한다. 차별 사유마다 경중과 정도 등 천태만상인 상황에서 구제 수단만 일률적으로 정해 놓을 경우 사회적 혼란만 야기한다. 개별 법률을 통해 각각의 사유마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현명한 입법이다.

이은경 변호사 (법무법인 산지·전 인권위 비상임위원)

미 다양한 차별금지법…21개주 종교 반할 땐 법 거부 가능

미국은 1867년 헌법이 평등권을 보장하도록 개정된 이래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방지하는 연방 차별금지법을 제도화했다. 연방 차원의 ‘민권법’(1964년)과 ‘평등접근법’(1984년)을 포함하여 ‘캘리포니아 젠더 차별금지법’ 등 여러 주가 차별금지법을 입법화했다. 다만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26개 주 중 21개 주에서 ‘종교 면제조항’(religious exemption)을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근거로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주법의 강제를 시민들이 거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영국은 ‘공공질서법’(1986년), ‘인종·종교혐오금지법’(2006년)을 비롯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고 할 수 있는 ‘평등법’(2010년)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1972년 첫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을 토대로 1999년 프랑스 사회는 동성 간 결합, 2013년엔 동성 결혼을 인정했다.

일부에선 차별금지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논란이 일기도 한다. 2013년 영국에서는 토니 미아노 목사가 동성애 반대 설교를 하다 한 동성애자 가족이 신고해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성적 지향 차별금지 문구 위반이 그 이유였다. 지난해엔 미국 텍사스에서는 7세 아들이 성전환하겠다는 걸 반대한 아버지에게 댈러스 법원이 양육권을 박탈했다. 공교육 현장에서도 차별금지는 논란거리가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소수계 우대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의 금지안을 다시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가 결국 부결됐다. 이 법안이 부활하면 학업 성적이 우수한 인종 그룹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돼 역차별에 해당한다는 일부의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고성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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