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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세상 실현” vs “건전 가정 해체”…표류하는 ‘포차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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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호 08면

포괄적 차별금지법 논란 

“동성애를 반대하느냐.”(홍준표)

외국인·난민·성소수자·장애인 등 #모든 종류의 차별 묶어서 금지 #정의당 주도, 인권위도 제정 촉구 #기독교계 “나쁜 법안” 강력 반발 #27만7000명 반대 서명 국회 제출 #통과 열쇠 쥔 민주당 소극적 입장

“반대합니다.”(문재인)

2017년 4월 25일 열린 JTBC 대선 토론회에선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의 질문에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홍 후보는 이어 “차별금지법이라고…이게 사실상 ‘동성애 허용법’인데 동성애 반대하는 게 분명합니까”라고 거듭 질문하자 문 후보는 “저는 뭐…동성애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지난 6월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자 제정 찬성 측과 반대 측은 각각 여의도 국회 앞에서 관련 집회를 열었다. 사진은 지난 11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관계자들이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장면이다. [연합뉴스]

지난 6월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자 제정 찬성 측과 반대 측은 각각 여의도 국회 앞에서 관련 집회를 열었다. 사진은 지난 11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관계자들이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장면이다. [연합뉴스]

차별금지법은 지난 대선 때도 후보 간 토론회 때 다뤄질 만큼 뜨거운 감자였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2017년 대선 땐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공약에 담진 않았다. 당선 이후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국정과제에도 차별금지법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회에서도 차별금지법 입법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21대 국회가 개원한 후 지난 6월 29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성별, 장애, 나이, 경제적 상황 등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구체적으로는 여성·장애인·외국인·이주민·난민·성소수자·비정규직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에게 ‘평등권’이 보장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근거로 그동안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연령차별금지법, 난민법, 기간제법 등 다양한 이름의 개별 차별금지법이 제정돼 있다. 하지만 장 의원은 “개별 차별금지법을 하나씩 추가로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입장이다. 이 법안은 지난 수년 동안 찬반을 둘러싸고 논란이 컸던 만큼 발의에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법안 발의에 함께 이름을 올릴 의원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 의원은 “드래곤볼(일본 만화로 드래곤볼 7개를 모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을 모으는 마음으로 의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당시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남기기도 했을 정도다. 이후 장혜영·심상정·배진교·이은주·강은미·류호정 등 정의당 의원 6명과 권인숙·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려 의원 10명을 간신히 채웠다.

지난 6월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자 제정 찬성 측과 반대 측은 각각 여의도 국회 앞에서 관련 집회를 열었다. 사진은 지난 6월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등 회원들이 법안 반대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다. [뉴시스]

지난 6월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자 제정 찬성 측과 반대 측은 각각 여의도 국회 앞에서 관련 집회를 열었다. 사진은 지난 6월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등 회원들이 법안 반대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다. [뉴시스]

장 의원의 법안 발의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도 입장을 밝혔다. 인권위는 전원위원회를 거쳐 확정한 법안 시안을 공개하고 “어떤 이유로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보할 수 없다”며 “국회는 조속히 입법을 추진해 모두를 위한 평등에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에도 인권위는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당시 인권위는 성별, 장애, 국가, 피부색,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괴롭힘을 차별에 포함하고, 이행강제금 등 시정명령권을 도입해 차별에 대해 징벌적 배상을 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번번이 제정에 실패했다. 보수적 기독교계 등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이번 정의당 측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에 대해서도 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0월 27일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진평연)은 이 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목회자, 학계 인사, 법조인, 일반 시민 등 27만 7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상태다. 해당 법안이 현행 헌법에 위배될 뿐 아니라 동성 간의 결합 등을 합법화해 건강한 가정을 해체한다는 것이다. 또 동성애 등을 인정하게 되면 잘못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의 폐해를 가르치는 비판의 자유조차 억압하는 등 그 폐해가 크기 때문이라는 것도 반대하는 주된 이유다.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된 지 6개월 가까이 돼 가지만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 통과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민주당은 여전히 소극적 입장이다. 전국의 대형교회를 비롯해 기독교계가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지역구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정의당 측은 “과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고 한 민주당이 일부 반대 세력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하다”며 “명확한 입장을 정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고성표·김나윤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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