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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회계 문란" 장비 빌려 예산 아낀 직원 징계한 농진청

중앙일보

입력

농촌진흥청 건물과 전북혁신도시의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농촌진흥청 건물과 전북혁신도시의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농촌진흥청이 부족한 실험 장비를 무료로 빌려 써 결과적으로 국가 예산을 아낀 직원을 끝내 징계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직원은 “적극 행정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농진청은 “회계질서 문란”으로 봤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전 법원이 “장비대여 업체의 청탁 정황이 전혀 없다”고 판결했지만 농진청이 징계를 강행했다. 농진청 노동조합은 “비상식적”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10일 불문경고 처분 내려져 

25일 농진청과 노조 등에 따르면 농진청 징계위원회는 지난 10일 위원회를 열고 국립식량과학작물원 A연구사에 대해 ‘불문경고’ 처분을 내렸다. A연구사는 지난 2017년 초 B연구관(당시 연구실장)과 작물품종 개량연구 등을 수행하던 중 장비가 부족하자 실험장비업체로부터 ‘데모장비’(전시제품)를 무상으로 빌려 썼다.

대여 장비는 기초 실험장비인 동결건조기(1380만원·새제품 시중 가격 이하 같음)를 비롯해 원심분리기(286만원)·전자저울(341만원)이다. A연구사 등은 대여 전까지 50m가량 떨어진 본관으로 이동한 뒤 ‘다른 실험실’의 장비를 써야 했다. 자연히 연구 능률은 떨어졌다. 시료를 외부로 들고 다니는 만큼 오염 가능성도 따랐다. 이후 바뀐 연구환경에서 A연구사는 국제학술대회 논문발표 성과 등을 냈다.

지난해 농촌진흥청 종합연찬관에서 열린 '9월 직원조회'에서 직원들이 적극행정 실천다짐을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농촌진흥청 종합연찬관에서 열린 '9월 직원조회'에서 직원들이 적극행정 실천다짐을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혐의 없음'에도 징계요구 바뀌지 않아  

하지만 농진청 감사당담관은 무상 대여를 직무 관련자로부터의 ‘금품수수’ 등으로 판단한 뒤 지난해 12월 각각 중징계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A연구사는 농진청이, B연구관은 인사혁신처가 징계위를 연다. 앞서 그해 8월 검찰에서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이 떨어졌지만 감사담당관의 징계요구는 바뀌지 않았다.

결국 A연구사가 먼저 가장 낮은 징계인 ‘불문 경고’ 처분을 받았다. 죄는 묻지 않지만, 경고는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불문경고에도 1년간 성과포상이 무조건 제외되는 불이익이 따른다. A연구사는 최근 3년간의 성과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한다. B연구관은 현재 인사혁신처 징계위원회(27일 예정)를 앞두고 있다.

법원까지 '기각' 결정했지만... 

문제는 징계위가 열리기 전인 지난달 12일 법원에서 ‘기각’결정이 나왔다는 점이다. 농진청은 올 1월 A연구사·B연구관, 장비대여업체 대표 등을 상대로 일명 ‘김영란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 처분요구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이 A연구사 쪽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은 기본 장비의 부재로 업무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A연구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또 빌린 장비가 중고라 가치가 크지 않은데다 연구실내 공용으로 사용한 점도 유리하게 작용됐다. 특히 법원은 “(A연구사 등이) 장비대여업체로부터 어떠한 청탁을 받았다고 볼만한 정황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농진청 노조가 징계위가 부당하다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농진청 노조가 징계위가 부당하다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노조 "비상식적 징계" 

노조 관계자는 “(중징계가 요구된 사안에 대해) 검찰의 ‘혐의 없음’에 이어 법원에서도 ‘기각’ 결정이 나왔다”며 “그런데도 (본청이) 징계요구를 철회하지 않은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A연구사 등이 직장 갑질피해 신고를 한 뒤 표적감사가 이뤄졌다는 의심이 든다”며 “노조에서 이 사안을 가볍지 않게 보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B연구관은 “2개월전쯤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다”며 “몸도 마음도 망신창이가 됐다”고 말했다.

농진청 "공직자 청렴의무 높아야" 

이에 대해 농진청은 공직자의 청렴의무는 그만큼 높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농진청 관계자는 “일반인과 공무원은 다르다. ‘뭐가 문제 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공무원행동강령에 따라 징계를 요구한 것이다”고 밝혔다. 또 “농진청 징계위원회 5명 중 변호사 등 외부인사가 4명”이라며 “외압이 작용할 수 없는 구조다. 이런 위원회를 거쳐 징계수위가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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