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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공무원 먼지 끼는건 용인 못해? 정세균 접시론이 놓친 한가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세균 국무총리.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 뉴스1

‘접시론(論)’ 

정세균 국무총리가 겨를 있을 적마다 공직자에게 이렇게 강조한다. 지난 1월 취임식 때다. 정 총리는 취임사를 통해 “일하다 접시를 깨는 일은 인정할 수 있어도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끼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후 정 총리는 지난 6일 상반기 적극 행정 우수사례로 꼽힌 총리실·국무조정실 직원 11명과 한 개 부서에 접시 모양의 자기를 수여하는 행사를 열었다. 총리실 안팎에서 ‘적극 행정 접시’로 불린다.

적극행정 접시. [사진 국무총리실]

적극행정 접시. [사진 국무총리실]

코로나19 현안 앞장선 직원  

국무총리실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반 실무를 총괄 중인 노혜원 과장이 최우수다. 총리실에 따르면 노 과장은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해결사’로 평가받는다.

노 과장은 중대본의 운영방식별 장단점이나 과거 감염병 사례를 면밀히 검토한 뒤 코로나19 중대본을 보건복지부 장관-행정안전부 장관 ‘2차장’ 체제로 기획했다. 현행 재난안전법상 복지부 장관은 차장이 될 수 없다.

또 그는 마스크 수급문제를 풀 5부제나 경증환자 치료를 위한 생활치료센터 등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부처 간 조율이나 규제개선 등을 도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생활치료센터의 경우 비의료시설이다 보니 의료시설과 물품의 반입이 안 된다. 이를 적극 행정으로 풀었다.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1터미널 입국장의 모습. 뉴스1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1터미널 입국장의 모습. 뉴스1

병역미필자 여권문제 풀기도 

우수사례자인 박준희·임효진 사무관은 병역미필 청년의 1년짜리 단수여권 발급문제를 해결했다. 그동안 프랑스 등 43개 국가는 한국의 단수여권을 인정하지 않아 청년층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두 사무관은 부처간 협업을 이끌었고, 결국 25세 이상 병역 미필자에게도 ‘5년 복수여권 발급’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적극 나섰다 온 중징계 위기

반면 적극적으로 일했다 접시는커녕 중징계 위기에 몰린 경우도 있다. 2017년 농촌진흥청에서 작물품종 개량연구 등을 수행하던 A연구실장과 B연구관 이야기다. 10여명의 연구사가 근무하는 연구실에 기초 실험장비인 동결건조기·원심분리기·전자저울이 지원되지 않자 이들은 ‘데모장비’(전시제품)를 무상으로 빌려 과제를 수행했다.

결과적으로 2000만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를 봤다. 여기에 국내 수제맥주산업을 위한 쌀맥주 연구, 기능성 도담쌀 제품화 연구 등을 수행해 10여개의 특허기술개발 등 성과로도 이어졌다고 한다.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 뉴스1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 뉴스1

금품수수 행위에 해당돼 

하지만 농진청은 지난해 12월 감사처분심의위원회를 거쳐 A실장·B연구관을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 등으로 중징계 처분해달라고 인사혁신처에 요구했다. 정당한 대가 지급 없이 ‘을’의 입장인 직무 관련 거래업체에 시험장비를 직접 요구했다는 이유에서다. 농진청은 금품수수 행위인 만큼 예산절감이나 적극 행정으로도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물품관리관 승인 없이 장비를 들여왔다고 결론 내렸다.

접시에 먼지 쌓이는 것 봐야하나 

A실장·B연구관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공용으로 쓸 목적으로 빌린 데다 실제 돈을 받지도 않아서다. 이쯤 되면 앞으로 기초장비를 구매해줄 때까지 기다리거나 타 실험실에서 눈치 보며 빌려 쓰는 게 상책이냐는 항변이 나올 법하다. 접시에 먼지가 수북이 쌓이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냐는 것이다.

물론 이번 일을 계기로 연구기관의 부정청탁금지법(속칭 김영란법) 위반 논란이 나왔다. 이참에 실험장비 구매·대여 기준을 다시 한번 촘촘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 B연구관은 국민권익위원회에 관련 문의를 했지만 올 5월 원론적 수준의 답변을 내놨다.

세종=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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