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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구절초 지방정원 조성 사업, 구석기 유물 쏟아졌는데 강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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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면 구절초 테마공원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물. [사진 김재영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

산내면 구절초 테마공원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물. [사진 김재영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

전북 정읍시가 수십억 원을 들여 대규모 인공정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대량으로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읍에서 구석기 유물이 나온 건 처음이지만 정읍시는 “추가 발굴은 없다”며 사업 강행 의사를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지표·정밀조사 중 1000여점 발굴 #시 “관광사업 시급, 추가발굴 없다”

18일 정읍시에 따르면 시는 산내면 구절초 테마공원(면적 41만5000㎡) 일원에 국비·시비 60억원을 들여 약 30만㎡ 규모의 ‘구절초 지방정원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산림청 공모 사업으로 들꽃 정원을 꾸미고 잔디광장·생태연못·관망대·산책로 등을 만드는 게 골자다. 2019년 착공해 내년 말 완공이 목표다.

하지만 지난해 시굴·지표조사 과정에서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와 구석기 유물 70여 점이 발견되면서 변수가 생겼다. 정읍시가 (재)전주문화유산연구원에 의뢰해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정밀 발굴 조사를 진행한 결과 구석기 유물 1000여 점이 발굴됐다. 대형 석재와 좀돌날, 돌도끼, 망칫돌, 갈돌 등이다. 긁개와 밀개 등 성형석기(成形石器)도 출토됐다. 학계에서는 화덕 흔적이 발견된 점을 바탕으로 해당 부지가 구석기인들의 거주 공간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읍시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구절초 테마공원을 전남 순천만국가정원처럼 사계절 내내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만들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 있어서다. 정읍시는 결국 추가 조사는 하지 않고 유물이 발굴된 장소를 잔디 등으로 덮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정읍시 관계자는 “지방정원 사업이 우선”이라며 “발굴된 유물은 시립박물관과 전주문화유산연구원에 나눠 보관·전시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읍시는 지난 9월 이런 내용이 담긴 종합 보고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반면 학계에서는 “유적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추가로 발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번 발굴에 참여한 대학 교수는 “정확한 연대 측정값이 나와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드물게 후기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보여주는 유물이 다양하게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김재영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은 “구절초 축제 기간에 관광객이 꽃과 더불어 선사 유물을 관람하는 ‘구(구절초)·구(구석기) 축제’ 등도 기획할 만하다”고 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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