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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찾아간 與 "차기 정부도 대북정책 노력해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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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한반도 태스크포스(TF) 송영길 위원장(가운데)과 윤건영(오른쪽), 김한정 의원이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를 방문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더불어민주당 한반도 태스크포스(TF) 송영길 위원장(가운데)과 윤건영(오른쪽), 김한정 의원이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를 방문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미국을 방문 중인 더불어민주당 한반도 태스크포스(TF) 소속 송영길, 김한정, 윤건영 의원은 17일(현지시간)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을 만나 새로 들어오는 조 바이든 행정부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계승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민주당 송영길·김한정·윤건영 의원 5박 7일 방미 #송 의원, 비건 만나 "北 대화는 톱다운·바텀업 함께" #바이든은 톱다운 버리고 바텀업 방식 접근 시사 #김 의원 "비즈니스적 요소 필요" 제재 완화 요구 #바이든 측은 북한 인권문제까지 짚겠다 별러

미 정권이 교체되는 민감한 시기에 굳이 워싱턴을 찾아와 임기가 내년 1월 끝나는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료에게 차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다.

세 의원은 이날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비건 국무부 부장관과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한반도 TF 단장인 송 의원(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관여 정책은 고립된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낸 의미 있는 첫발"이라고 평가하고 "차기 미국 행정부에서도 이러한 노력을 지속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6·15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이정표가 돼 한국과 미국 모두 어느 정부라도 상관없이 남·북·미 관계 발전을 이끌어나가길 바란다"고도 했다.

송 의원은 또 "북한과 대화하는 데 있어 '톱다운'과 '바텀업' 두 방식 간의 상호 조화가 필요하다"고도 언급했다. '톱다운' 방식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해법을 모색한 하향식 접근법을 말한다.

그간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 방식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지난달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김 위원장과의 회담 가능성에 대해 "북한이 핵 능력을 감축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올 초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그간의 톱다운 방식과 달리 우리 협상가들에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밝혀 '바텀업' 방식의 협상에 나설 것을 분명히 했다. 실무협상에서 시작해 단계를 밟아 올라가 정상회담 등 고위급 만남으로 이어지는 접근법이다.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의 발언이 단지 희망 사항에 불과할 수도 있단 얘기다.

동행한 같은 당 김한정 의원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부속실장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수행한 경험을 언급하면서 "회담 성공 배경에는 현대그룹의 대북 투자라는 비즈니스적 요소가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핵 개발에 따른 엄격한 대북 제재가 존재하기에 비핵화 협상에 북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함께 '당근'을 주는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고 밝혀 사실상 남북 경협 추진과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이 역시 제재 유지 및 강화를 강조하고 북한 인권 문제까지 짚겠다는 바이든 측 싱크탱크 관계자들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윤건영 의원은 "차기 행정부의 북·미 관계는 실패한 하노이가 아닌 싱가포르 회담에서 출발해 국가 대 국가의 합의가 이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이든 당선인은 하노이와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포함해 "러브 레터"를 주고받는 트럼프식 대북 정책이 "폭력배(thug)" 같은 북한 정권에 핵무기 개발의 정당성을 부여했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방미단에 따르면 비건 부장관은 "지난 북·미 대화 경험과 교훈이 다음 행정부로 이어지고, 향후 북·미 협상이 지속해서 충실히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또 "북·미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보여준 협조와 지지에 큰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만료와 함께 자리를 비워야 할 비건 부장관은 그답게 친절한 '립서비스'로 응했다.

민주당 한반도 TF는 미 대선 3주 전인 지난달 중순께 선거 이후 한·미동맹과 한반도 주변 정세 대비를 위해 발족했다. 방미 시점상 미 대선이 끝날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지만, 현재 미국은 전례 없는 대선 불복으로 아직 선거 국면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정권 인수·인계가 멈춰 국정 운영과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미한 것 자체도 뜬금없지만, 떠나는 트럼프 행정부에 차기 행정부의 정책을 주문하는 황당한 자리는 말 그대로 부적절하다.

세 의원은 "미 의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겠다"고 밝혔지만, 한·미 관계 강화는커녕 한국이 향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만 주는 방미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을 방문 중인 더불어민주당 한반도 태스크포스(TF) 소속 송영길 위원장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한 식당에서 미 연방 하원의원에 첫 당선된 한국계 매릴린 스트릭랜드(워싱턴주) 당선인과 만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한정 의원, 매릴린 스트릭랜드 당선인, 송영길 위원장, 윤건영 의원, 최광철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 대표. [더불어민주당 제공]

미국을 방문 중인 더불어민주당 한반도 태스크포스(TF) 소속 송영길 위원장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한 식당에서 미 연방 하원의원에 첫 당선된 한국계 매릴린 스트릭랜드(워싱턴주) 당선인과 만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한정 의원, 매릴린 스트릭랜드 당선인, 송영길 위원장, 윤건영 의원, 최광철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 대표. [더불어민주당 제공]

이에 대해 송영길 의원은 “비건 부장관은 민주당에서도 트럼프 행정부 인사 중 가장 인정받는 전문가”라며 “바이든 행정부에서 새로운 한반도 라인이 구성됐을 때 비건 부장관의 의견이 중요할 것이라 생각해 면담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입국한 세 의원은 비건 부장관을 비롯해 미 의회와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는 5박 7일 일정을 마치고 20일 귀국할 예정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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