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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기의 소통카페

공감 능력 잃은 권력은 부메랑의 칼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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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 학기의 반환점 격인 중간시험이 끝나면 좋아하는 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다. 처음에는 수업 내용과 관련 있는 시를 소개했다. 그러다 학생들이 선정한 시를 낭송하고 그 이유와 의미를 설명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첫사랑, 보고 싶은 친구,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은 그리움, 갖고 싶은 물건 같은 것을 골라보자고 했다.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졸업생들은 매력적으로 기억했다.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 공감의 가치 강조 #분할통치, 팬덤정치 오래 못가 #인간은 균형잡힌 공동체 지향

사회과학적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다루는 수업에 웬 ‘시?’라는 호기심의 발동. 또는 ‘그냥  시 비슷한 것’을 마음 내키는 대로 얘기하면 된다는 탈 고정관념. 혹은 ‘정답 없는 수업’이라는 내 감언이설을 받아들여 언론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호사일 수도 있다. 초·중·고등학교와 학원을 포함하는 대학 이전의 교육환경을 견디느라 탈진한 심신을 회복시켜줄 것으로 기대한 대학이라는 신세계도 학점과 취업 스펙 준비로 압박받는 곳임을 깨닫고 느끼는 해방감일지도 모른다.

같은 시는 거의 없었고, 선택한 이유와 느낌에 대한 설명도 각양각색이었다. 동료의 말에 모두 진지하게 경청하고 반응했다. ‘정서적 공감’에서 오는 ‘동료와 수업공동체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천편일률적인 교과서식 내용이 아니라 자유롭게 동료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동료를 발견하는 것이다. 나이·성별·외모·옷·외면적 행동과 같은 사회적 차원의 정보로 관찰되던 동료가 자신처럼 고민하고 희망하며, 희로애락하는 존재로 느껴졌다. 대한민국 교육체제가 주입한 이기심과 경쟁심 탓으로 보지 못하던 동료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공감의 경험’을 통해 공유하는 것이다.

소통카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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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고전인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1759년에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심의 역기능에 대한 우려를 하면서 공감의 가치를 강조하였다(『도덕감정론』, 박세일·민경국 공역). 세상 사람들이 탐욕과 야심, 부와 권력, 최고를 추구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야단법석을 떠는 경쟁심·이기심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하나의 정연한 질서를 가능케 하는 원리가 인간의 심성에 내재한다’고 하면서, 그것이 바로 ‘공감의 원리’라고 하였다. 공감은 ‘타인의 슬픔을 보고 슬픔을 함께 느끼고…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것으로 증명을 요하지 않는 본원적 감정의 하나’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의 가슴 속에 있는 감정과 동일한 이웃의 공감(fellow-feeling)을 느끼는 것 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고, 그 반대로 이웃의 공감 부재를 느끼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없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도덕감정론』을 빌린 것은 대통령 선거에서도 여전한 트럼프의 공감 능력 결여와 후안무치 때문이었다. 선거 전에도 결과 승복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자신에게 불리한 것으로 예측되는 우편투표에 대해 음모와 사기라는 복선을 깔았었다. 미국의 선거제도에 의존하여 대통령이 되겠다고 마스크도 쓰지 않고 동분서주 선거운동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제도를 부정하는 이율배반의 안하무인. 개표가 한창 진행 중인데 승리했다고 선언하며, 자신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경합 주의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패색이 짙어지자 일부 주에 대해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재검표를 요구하며 투표 조작 혐의로 제소했다. 트럼프가 팬덤 정치에 몰입하면서 미국은 두 개의 미국으로 갈라졌다. 인종차별적 주장과 행동도 공공연하게 등장했다.

지난 8일 오전 1시 24분께 조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해졌다.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것도 아니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이들과 조력자들이 법 정신과 권력을 악용하고, 공동체를 분열로 탈진하게 만드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정당과 정치인의 목적인 정권 창출을 하더라도 확증편향의 지지자에 의지하는 분할통치(divide and rule)는 오래갈 수 없다.

공감의 능력을 지닌 인간은 결국 균형 잡힌(check and balance) 공동체를 지향한다. 법과 권력의 오용과 남용은 부메랑의 칼날이 된다. 역사의 교훈이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