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한센병 환자 무료 봉사…안성열 성형외과 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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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왕시 성라자로 마을 인근에 위치한 한국한센복지협회 부속병원. 성형외과 전문의인 안성열 원장은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을 반드시 이곳에서 맞는다.

그를 반기는 사람들은 일그러진 얼굴의 한센병(나병)환자들. 그는 20여명의 환자를 진료한 뒤 쉴 틈도 없이 다시 수술대에서 분주하게 손을 움직인다.

주저앉은 코를 세워주고, 눈꺼풀이 뒤집혀 감지 못하는 눈에 인공피부를 이식하는가 하면 눈썹을 심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오후 2시, 그는 서울에서도 가장 번화한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으로 돌아와 있다.

그를 기다리는 환자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도시의 젊은 여성들. 이들에게 최고의 미를 선사하기 위해 그의 손은 다시 바빠진다. 이렇게 월요일마다 화려한(?) 변신을 거듭하는 게 올해로 꼭 10년째다.

두 개의 손. 그러나 그는 돈을 버는 손보다 봉사하는 손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다.

"부끄럽지요. 의사 중에는 평생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바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의 스승 서순봉 박사(전 경북대 의대 피부과 주임교수)가 그랬다. 그는 동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센병 치료센터를 경북의과대학 캠퍼스 안에 설립했다. 안원장의 수술실 벽에는 82세인 지금도 대구 칠곡가톨릭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고 있는 스승의 사진이 걸려 있다.

안원장은 피부과와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함께 가지고 있다.

"선생님(서교수)에게 저는 한때 '내 놓은 자식'이었죠. 피부과를 전공해 한센병 환자를 돌볼 것으로 생각하셨는데 뒤늦게 성형외과를 전공하겠다고 하니 돈이나 벌려는 제자로 비친 것이죠."

하지만 그가 성형외과를 전공한 데는 나름대로 속뜻이 있었다. 레지던트 시절 1년에 한번 한국을 방문해 한센병 환자를 수술하는 여의사 닥터 워런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손재주를 옆에서 본 것.

"피부과에선 약을 주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 분은 수술로 손가락을 펴고, 치아와 얼굴을 바로잡는 등 한센병 환자들이 원하는 치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재건 성형을 익히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東京)여자의대병원에서 8년, 다시 미국의 한 화상(火傷)센터에서 1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한센병 환자를 완벽하게 재활시키겠다는 의지가 제2의 스승이 돼 그를 이끈 것.

한센병은 이제 천형(天刑)이 아니다. 이들을 '문둥이'로 부르지도 않는다. 약복용 후 5일이면 전염력이 없어지고, 1백% 완치가 가능하기 때문. 지금 그가 수술하는 사람은 대부분 감염 초기에 약을 복용하지 못해 기형이 됐지만 지금은 정상이 된 사람들.

"도시화 바람이 나환자촌에도 불어와 일반 사회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완치 환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들에게 얼굴에 남은 과거의 흔적은 치명적인 사회활동의 장애요인이 되죠. 따라서 이들의 성형욕구는 생존과 관계될 정도로 강열합니다."

수술 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웃는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 이것 만으로도 그가 매주 반복하는 변신의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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