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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코로나 확산, 저축 고갈돼 새 정부 추가 부양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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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호 15면

대선 결과를 놓고 미국 정국이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5일(현지시간) 또 다시 ‘제로(0) 금리’를 유지했다. 연준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기준금리를 현 0.00~0.25%에서 동결한다고 밝혔다. 금리 동결은 위원들의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Fed, 또 기준금리 동결 #“공중보건 위기가 고용·물가 압박” #한·미간 금리 차이 0.25%P 유지 #2022년까지 제로금리 지속 전망

연준은 3월 1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일자 기준금리를 1.00∼1.25%에서 0.00∼0.25%로 1%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이후 5일까지 모두 5차례 FOMC 회의가 열렸지만 내리 동결을 결정했다. 이번에는 코로나19 사태가 더 크게 확산하면서 회복세로 접어든 미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FOMC는 정례회의 후 내놓은 성명에서 “경제·고용이 회복하고 있지만 연초 수준보다는 여전히 크게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현재 진행 중인 공중보건 위기가 계속 경제활동과 고용, 물가를 압박하고 있다”고 금리 동결 배경을 설명했다. 직전 회의 땐 “최근 몇달간 경제활동과 고용이 회복됐다”고 했는데, 이번엔 표현이 한층 누그러졌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기 개선 속도가 완만해지고 있다”면서 특히 서비스 분야 지출이 저조하다고 지적한 후 “코로나19 추가 확산과 가계 저축 고갈 가능성이 미 경제의 양대 리스크(위험요소)”라고 말했다.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파월 의장은 “재정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회복세가 더 두드러질 것”이라며 “추가 부양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정정책 지원이 늦어지면서 연준이 추가 완화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선 “연준은 모든 외부 요인을 고려해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광범위한 정책을 시행한다면 상황은 더 나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4차례에 걸쳐 총 2조8000억 달러(약 3155조원)를 집행했다. 대통령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추가 경기부양책이 나올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막대한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고, 트럼프 정부는 대선 이후 경기부양책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과 민주당은 트럼프보다 5000억 달러 더 많은 2조2000억 달러의 경기 부양책을 약속했다. 앞서 지난 9월 민주당은 1인당 1200달러의 현금 지급과 실업수당 확대 등을 중점으로 한 2조2000억 달러 규모의 예산안을, 공화당은 중소기업 대출 지원 등을 위한 5000억 달러 규모의 예산안을 주장해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의 상원 장악은 추가 경기 부양 시기와 규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언론들은 “추가 경기 부양책이 나오긴 하겠지만 차기 행정부가 어떤 종류의 부양책을 내놓을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연준은 고용과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FOMC도 이날 성명에서 “고용 문제가 완전고용에 부합하는 수준에 도달하고, 물가가 일정 기간 2%를 웃도는 궤도에 도달할 때까지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향후 금리 전망을 가늠할 수 있는 점도표(dot plot)를 보면 내년에도 금리 동결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점도표는 제롬 파월 의장을 포함한 연준 위원들이 예상하는 특정 시기의 금리 수준을 무기명으로 적은 표다.

9월 FOMC 회의 후 공개된 점도표에서 FOMC 위원들의 기준금리 전망치 중간값은 올해 말과 내년 말, 2022년 말 모두 0.1%를 기록했다. 2022년까지 제로 금리가 유지될 것이란 의미다. 미 대선에서 시장이 기대했던 ‘블루웨이브’가 무산된 것도 금리 동결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당초 민주당 조 바이든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민주당이 상원의 다수당이 되면 연준의 제로금리 정책은 조기에 중단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있었다. 대규모 재정 투입이 실물경기 회복과 인플레이션 상승을 앞당겨 연준의 긴축(緊縮)을 촉구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바이든의 당선 가능성이 커졌음에도 블루웨이브는 무산되면서 연준의 조기 금리 정상화 확률도 낮아진 것이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한미 간 금리차도 0.25%포인트를 유지했다. 지난달 1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0.5%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연준이 금리 동결 기조를 재확인한 만큼 한은도 당분간 현행 금리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다. 원화는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0.25%)과 같아지면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출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7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현재 기준금리(0.5%)가 ‘실효하한’에 근접했다”고 밝힌 바 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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