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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맨 변신한 진상헌, 팀 선두 이끈 거미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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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진상헌

진상헌

“(진상헌을) 영입하게 허락해준 구단주께 감사드린다.”

블로킹 1위·속공 2위…3연승 앞장

프로배구 OK금융그룹 석진욱(44) 감독에게 미들 블로커 진상헌(34·사진)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한항공을 떠나 ‘OK맨’으로 변신한 진상헌의 활약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OK금융그룹은 올 시즌 V리그에서 돌풍의 주인공이다. 중위권으로 여겨졌는데, 우승 후보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을 연파했다. 3연승(승점 8)으로 단독 1위다.

송명근, 펠리페, 이민규 등의 활약도 좋았지만, 그 누구보다 진상헌을 빼놓을 수 없다. 진상헌은 첫 경기였던 한국전력전에서 4세트에 출전했다. 경기 전 연습 때 가벼운 종아리 통증이 있었고, 석 감독이 진상헌을 배려했다. 한 세트만 뛰었는데, 블로킹을 4개나 잡아냈다. 대한항공전에서는 블로킹 4개를 등 11점을 올렸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대한항공 세터 한선수, 그리고 공격수의 타이밍을 꿰뚫고 있었다. 현대캐피탈전에서도 11득점이었는데, 블로킹이 6득점이었다. 28일 기준으로 블로킹은 세트당 1.4개로 1위, 속공은 63.64%로 2위다.

진상헌은 2007년 한양대를 졸업하고 대한항공에 입단했다. 지난 시즌 뒤 OK금융그룹으로 이적했다. 그는 구단 창단 후 첫 외부 자유계약선수(FA, 연봉 2억5000만원)였다. 30대 중반 선수의 FA 영입. 구단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석진욱 감독은 “구단에 영입 목표와 이유를 설명했다. 그랬더니 ‘OK’ 사인이 나왔다. 상헌이가 온 직후, 센터 손주형이 (마르판 증후군 수술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상헌이가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진상헌 효과는 경기 외적으로도 크다. 석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전술을 연구하고, 대화하는 걸 장려한다. 진상헌도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그는 “해외 배구 영상에서 새로운 블로킹 훈련법을 봤다. 감독님께 해보자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받아주셨다. 우리 팀은 연구를 정말 많이 한다”고 전했다. 석진욱은 “베테랑으로서 팀을 이끄는 역할도 기대했다. 아주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진상헌의 별명은 ‘세리머니 장인’이다. 블로킹을 잡아낸 뒤 다양하고 화려한 뒤풀이를 잘해서다. 친정팀 대한항공전에선 자제했지만, 현대캐피탈전에선 평소 모습으로 돌아갔다. 석 감독은 “세리머니도 필요하다. 다만 나한테 와서 하지만 않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진상헌은 “계속 이기면 감독님도 좋아하실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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