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비자금' 정치권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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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 통합신당.민주당 등 3당은 8일 SK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같은 목소리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저마다 내심 긴장하고 있다. 수사가 어떻게 전개되고,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감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대선 때 당 재정위원장을 지낸 최돈웅 의원의 이름이 나온 데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정확한 걸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화살을 정권에 돌렸다.

최병렬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주변의 도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 특검을 도입하는 등 수를 내겠다"고 했다.

홍사덕 총무는 "우리는 어려운 여건에서 대선을 치른 반면 여당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며 "만일 수사가 야당을 겨냥한다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회창 전 총재 측근들은 "崔의원이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른다"며 "李전총재는 대선 때 돈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에선 "현 지도부는 대선자금 문제와는 관계가 없으므로 큰 타격은 없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번 수사가 정치판을 뒤집어엎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므로 마음을 놔서는 안된다"(정형근 의원)고 경계하는 이들도 있다.

통합신당은 "지난 대선을 깨끗하고 투명하게 치렀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이평수 공보실장)고 했다. "SK 사건이 어두운 정치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이종걸 의원은 "지난 대선 때 기업들이 한나라당에 더 많은 정치자금을 제공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당직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대선 때 盧대통령의 선거자금을 만진 이상수 의원과 盧대통령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해 검찰이 소환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당내에선 "기업의 비자금을 대선자금으로 받은 데다 당선 축하금까지 받았다는 의혹 때문에 우리가 개혁 세력이란 주장을 하기 어렵게 됐다" "이러면 신당은 안되는 것 아니냐"는 등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일단 소속 의원 등이 검찰 소환 대상에서 빠진 데 대해 안도하는 모습이다. 김성순 대변인은 "알맹이는 전부 저쪽(청와대와 통합신당)으로 갔으니 우리로선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유용태 의원은 "대선 때 이상수 의원이 금고를 따로 뒀으므로 우리는 무슨 돈이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며 "걱정은 저쪽 몫"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당직자들은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 박상천 대표는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수사하면 안된다"고 했다.

당내에선 "조만간 우리 당 의원들이 검찰에 불려갈 것"이란 말이 나온다. "대통령 측근들을 수사하는 마당에 민주당을 가만 놔두겠느냐"며 수사의 확대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이다.

민주당에선 검찰 수사의 칼날이 2000년 16대 총선 자금에까지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보이는 의원의 실명까지 거론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다.

이상일 기자<leesi@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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