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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노동개혁 적기…김종인이 쏘아올린 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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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5일 던진 노동개혁론이 정치권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당 비대위 회의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노동법 개정을 강조했다. 그러지 않고선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김, 노동 유연화는 오래된 지론 #독일도 진보정권 슈뢰더 때 개혁 #실업률 줄이며 경제 살리기 성공 #이낙연은 “노동자에 가혹” 반대

흔히 김 위원장은 재벌개혁론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노동개혁도 그의 오래된 지론이다. 최근 발간한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김 위원장은 1981년 전두환 정권에서 노동관계법 개정을 건의했을 때를 회고하며 “내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기업에는 노동조합이나 외부 노조의 지부가 존재하지 않고 대신 기업가·화이트칼라·블루칼라 3자가 모두 참여하는 노사협의체를 만들어 기업 내부의 일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고 적었다. 2012년 새누리당 국민행복특위 위원장 시절에도 대기업 노조들의 기득권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비단 김 위원장뿐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이미 정치권엔 노동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상당히 형성돼 있다. 특히 해외에선 노동개혁을 중도·진보 정부가 이끈 경우가 적지 않다. 독일의 좌파정당인 사회민주당 소속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2003년 높은 실업률을 해소하기 위해 ‘어젠다 2010’을 발표, 노동개혁(하르츠개혁)을 단행했다. 실업보조금 수령요건 강화와 실업급여 지급기간 단축 등으로 재정지출을 줄이는 한편 임시직·파견직 규제완화 등을 통해 노동시장을 유연화한 게 핵심이다. 개혁 이전 11.6%까지 치솟았던 독일 실업률은 2010년 7.1%, 2015년 4.8% 등 꾸준히 감소했다.

독일 유학파(뮌스터대 경제학 석·박사)인 김 위원장은 2012년에 펴낸 『왜 지금 경제민주화인가』에서 하르츠개혁을 긍정 평가했다. 국민의힘에선 “이번에 언급한 노동관계법 개정도 하르츠개혁을 염두에 뒀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 복지제도가 독일과 격차가 있어 하르츠개혁을 그대로 따라 하긴 어렵다”면서도 “보수체계·근무시간 탄력 적용, 성과평가 개선 등을 통해 청년 취업 자리를 늘리는 형태로 하르츠개혁을 차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노동계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민주당이 노동개혁을 추진해야 개혁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전망이 나온다.

경총 “기업규제 3법 연기를” 이낙연 “늦추기 어렵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방문해 기업규제 3법 처리 입장을 밝히며 재계의 협조를 부탁했다. 왼쪽은 손경식 경총 회장. 오종택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방문해 기업규제 3법 처리 입장을 밝히며 재계의 협조를 부탁했다. 왼쪽은 손경식 경총 회장. 오종택 기자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영표 의원은 6일 페이스북에 “정기국회에서 노사관계와 노동법도 함께 개편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일자리 변화 대응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며 김 위원장의 제안을 환영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의원은 “노동 유연화는 정부·여당이 키를 쥐고 해야 한다. 숙고된 안을 갖고 당내 합의를 끌어낸 뒤 노동계 설득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선과 2022년 대선을 앞둔 민주당이 대형 노조들의 강력한 반발을 살 수 있는 노동개혁 문제에 얼마만큼 전향적으로 나올지는 미지수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김 위원장 주장에 대해 “이런 시기에 해고를 자유롭게, 임금을 유연하게 하자는 메시지는 노동자에게 매우 가혹하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기업규제 3법과 노동관계법의 동시 처리가 바람직하다”(주호영 원내대표)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향후 기업규제 3법 통과에도 노동관계법 협상이 변수가 될 수 있다.

한편 6일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기업규제 3법 처리를 경제 정상화 이후로 미뤄 달라는 재계의 요구에 거부의 뜻을 밝혔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대표단과의 간담회에서 “코로나19 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이번 국회에선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과 투자 활성화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시급하지 않은 경제제도 관련 사안들은 경제가 정상화된 이후에 다뤄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공정경제 3법(기업규제 3법의 민주당식 표현)은 오래된 현안이고 우리 기업의 건강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거나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다만 이 대표는 “우리 기업들이 외국 헤지펀드의 표적이 되게 하는 일은 막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상법 개정안 중 ‘3%룰’로 불리는 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 의결권 제한을 포함한 감사위원 분리 선임 조항이 ‘독소 조항’이라는 주장에 이 대표가 일부 공감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영익·김효성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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