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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수장 만난 이낙연 "헤지펀드 표적 되는 일 막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손경식 경총 회장, 김용근 상근부회장을 비롯한 6대그룹 사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하고 있다.오종택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손경식 경총 회장, 김용근 상근부회장을 비롯한 6대그룹 사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하고 있다.오종택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6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찾아 “요란 떨지 않고 조용하게 기업계와 의견을 나누는 기회를 갖겠다”고 했다. 이날 6대 기업(삼성·현대·SK·LG·롯데·한화) 사장단은 집권당 대표를 만나 경제·노동 관련 법안에 대한 의견을 직접 전달했다. 한 참석 의원은 “민주당이 반기업 정당이라는 인식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자리”라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재계는 적잖은 견해차를 드러냈다. 이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경제 3법'(상법 개정안·공정거래법 개정안·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과 관련해 “이것을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거나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기업계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은 함께 하고, 부분적으로 보완할 것이 있으면 보완하겠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마스크로 반쯤 가린 사장단 얼굴은 굳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려면 기업을 살리는 제도 개선이 필요한데 국회에서는 기업 경영과 투자에 제약을 가하고 부담을 늘리는 법안이 많아 경제계의 걱정이 크다”고 호소했다. 이를 들은 이 대표는 “분명한 것은 '공정경제 3법'은 아주 오래된 현안이고 우리 기업들의 건강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 기업들을 골탕 먹이기 위한 법안이 아니라는 말씀을 분명히 드린다”고 강조했다.

헤지펀드 공격 우려 공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손경식 경총 회장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백범로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손경식 경총 회장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백범로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 대표는 이날 간담회 중 일부 지점에서 재계 요구를 전향적으로 수용, 검토할 가능성을 내비쳤다고 한다.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 중 ‘3%룰’로 불리는 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 의결권 제한을 포함한 감사위원 분리 선임 조항이 ‘독소 조항’이라는 주장에 일부 공감하면서다. 이 조항은 최대주주의 과도한 경영권 독식을 막자는 취지로 설계됐지만, 동시에 경쟁사나 투기자본이 소수 주주로 둔갑해 기업사냥에 나설 수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한 참석자는 “손 회장을 필두로 6대 그룹 사장이 한 명씩 돌아가며 경제 3법에 대한 우려를 말했는데 공통적으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3%룰이었다”며 “구체적으로 ‘엘리엇 사태’를 예로 들었다”고 했다. 외국계 투기자본 엘리엇이 주주 이익 극대화를 내세우며 최근 5년간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 경영권을 수차례 위협한 일이 거론됐다는 전언이다.

간담회 후 이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우리 기업들이 외국의 헤지펀드의 표적이 되게 하는 일은 막고 싶다”고 했다. 간담회 말미에는 당내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을 통해 기업 목소리를 지속 청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고 한다. 당 핵심 관계자는 “민주연구원이 이미 협약을 맺은 기업부설 연구소를 통로로 활용해 비공개 토론회를 여는 등 다양한 소통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양정철 전 원장 시절인 지난해 7월 삼성·현대·LG·SK 등 4대 그룹 연구소와 정책 간담회를 추진하며 쌓은 네트워크를 복원할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

첫 협치 성과물 될까

손경식 경총회장(오른쪽 두번째)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백범로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손경식 경총회장(오른쪽 두번째)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백범로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다만 상법 개정안의 또 다른 쟁점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은 현행 개정안을 유지해도 무리가 없다는 게 민주당 지도부 입장이다. 오성엽 롯데지주 사장 등이 “국내에서 다중대표소송이 진행되면 해외 투자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 투자 유치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표 주변에서는 “대표가 별도 TF 구성을 지시할 만큼 '공정경제 3법'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가 경총을 찾은 이날 민주당 정책위원회 산하 ‘공정경제 3법 TF’는 첫 비공개회의를 열고 세부 핵심 쟁점을 추렸다. TF에는 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을 심의하는 국회 정무위 김병욱(간사)·홍성국·이용우·오기형 의원, 상법 개정안을 다루는 법사위 백혜련(간사)·송기헌 의원이 참여한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 앞 광장에서 열린 제4352주년 개천절 경축식이 끝난후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다. [뉴스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 앞 광장에서 열린 제4352주년 개천절 경축식이 끝난후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다. [뉴스1]

'경제 3법' 통과에는 국민의힘과 협상도 필요하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경제3법 협의와 동시에 노동법 개정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야당이 거론하는 노동법 개정은 부적절하다. 이런 시기에 해고를 쉽게 하고 임금을 유연하게 하자는 것은 노동자들께 너무도 가혹한 메시지”라고 썼다. 경총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노동조합법 개정안,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 특수형태종사자 관련 고용보험법 개정안 등 노동 관련 법안 의견을 냈지만, 구체적 논의 진전이 없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장동현 SK 사장,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 오성엽 롯데지주 사장, 김창범 한화솔루션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민주당에서는 이 대표와 함께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인 김진표 의원과 양향자 최고위원, 오영훈 당대표 비서실장, 신영대 대변인이 갔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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